김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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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월드컵 대표팀 시절 김병지

김병지 (金秉址, Kim, Byung Ji, 1970년 4월 8일 ~ )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2년부터 2016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하였던 전설적인 골키퍼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병지
  • 출생일 : 1970년 4월 8일
  • 신체 : 184cm / 78kg
  • 수상 경력
역대 K리그 대상 시즌 베스트 11 골키퍼 부문 4회 (1996ㆍ1998ㆍ2005ㆍ2007)
1998년 K리그 대상 특별상 (골키퍼 최초 필드 헤딩골 성공 기념)
2009년 K리그 대상 특별상 (K리그 통산 500경기 출장 기념)
  • 국가대표 경력
1995년 ~ 2002년, 200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본선 대표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본선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통산 A매치 62경기 출전 73실점)
  • 현 소속팀 : 현역 생활 은퇴
  • 특기할 만 한 기록
K리그 올스타 역대 최다 지명 및 최다 연속 지명 (13회, 1995 ~ 2007)
K리그 역대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 (706경기 출장)
K리그 역대 최다 무실점 경기 기록 보유자 (220경기 무실점)[1]
K리그 역대 최고령 출전 기록 보유자 (44세 7개월 14일)[2]
K리그 역대 골키퍼 중 최다 득점자 (3골), 최다 실점자 (724실점)[3]
K리그 역대 최초의 필드 헤딩골 득점 골키퍼 : 對 포항 스틸러스 (98.10.24)[4]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실점 득점 경고 퇴장
1992 현대 호랑이 현대 호랑이 K리그 10 1 11 0 0 0
1993 25 2 19 0 1 0
1994 27 0 27 0 1 0
1995 35 1 26 0 1 0
1996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30 0 37 0 1 0
1997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20 0 17 0 1 0
1998 25 0 33 1 2 0
1999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20 0 32 0 1 0
2000 31 0 38 2 2 0
2001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25 1 24 0 1 0
2002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21 0 27 0 1 0
2003 43 1 43 0 2 0
2004 39 0 39 0 1 0
2005 36 0 31 0 1 0
2006 FC GS FC GS 40 0 34 0 0 0
2007 38 0 25 0 0 0
2008 6 0 7 0 0 0
2009 경남 FC 경남 FC 29 1 30 0 1 0
2010 경남 FC 경남 FC 35 0 41 0 2 0
2011 33 0 44 0 2 0
2012 37 0 44 0 2 0
2013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클래식 36 0 42 0 2 0
2014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38 0 53 0 0 0
2015 27 0 3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706 7 754 3 25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8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09 - 2010 경남 FC 경남 FC 플레잉 코치[5]


유소년 생활[편집]

경상남도 밀양시 출신으로 밀양초등학교, 밀양중학교, 부산 알로이시오고등학교[6]를 나왔다. 밀양초 3학년 시절까지는 축구 선수로 활동하였으며, 중학교 시절에도 축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밀양중 졸업 후, 마산공업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신장이 작았던 탓에 거절당했다고 한다. 결국 김병지는 축구부 입단 + 국비 지원을 조건으로 고3 시절 부산 알로이시오기계고등학교로 전학을 결정한다.[7] 알로이시오 시절부터 골키퍼로 활약했지만, 소년의 집 출신이란 삐뚤어진 세간의 시선에다 3학년이 되어서야 축구계에 모습을 드러낸 탓에 김병지 선수를 받아줄 축구팀은 없었다. 결국 김병지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창원 기계공단의 금성산전[8]에 들어가 품질검사관리 직무를 2년간 수행하며 직장인 축구팀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K리그[편집]

현대ㆍ울산 시절[편집]

평범한 직장인으로 끝날 뻔했던 김병지 선수의 인생은 1989년 상무 축구단에 합격하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상무 소속으로 1991년 추계실업축구연맹전 국민은행 축구단 과의 결승전에서, 김병지 선수는 국민은행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었을 뿐 아니라, 연장전 이후 치러진 승부차기에서 국민은행 키커의 PK를 막아내며 상무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동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 프로 팀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 상무 전역과 동시에, 당시 현대 호랑이 축구단의 감독이었던 차범근 씨의 눈에 들어 월봉 80만원의 번외지명 신분으로 현대에 입단하게 되었다.[9] 이것이 1992년의 일이었다. 당시 현대 호랑이의 1선발 골리는 국가대표 최인영 씨였는데, 최선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로 발탁되어 국가대표 훈련에 불려다니는 통에 현대에서 출장하지 못하는 시간이 더러있었고 이러한 기회를 틈타 김병지 선수는 1군 무대에서 출장 경력을 쌓으며 빠르게 프로 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특히 1992년 열린 아디다스 컵대회에서 승부차기만 3개를 막아내는 등 PK 방어에서 강점을 보인 김병지 선수는 무서운 새내기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특히 1993년 K리그는 무승부가 폐지되고 90분 전후반 경기에도 승부가 나지않을 경우, 승부차기로 이어지는 희한한 제도를 채택했고 이에 김병지 선수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알까기를 범하며 세간의 혹독한 비판을 당했던 최인영 선수는 쓸쓸히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말았고, 이후 무주공산이 된 현대의 1선발 자리를 차지한 김병지 선수는 2000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활약하며 1996년, 울산 현대의 창단 이후 첫번째 우승을 견인하며 K리그 무대 최정상급 골리임을 입증해보였다.


포항 시절[편집]

FC GS 시절[편집]

경남 시절[편집]

전남 시절[편집]

706경기 대기록을 끝으로 현역 은퇴[편집]

2015년 시즌 종료 직전에 전남 드래곤즈에서 아들과 관련된 논란에 휩싸인 김병지 선수와 계약을 종료한다고 선언하면서 현역 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생기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지명도가 높고 전설적인 선수라 이적이 쉬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2016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어느 팀에도 입단하지 못하면서 잠정적으로 현역 은퇴에 가까워 졌다.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잠시 김동준 골키퍼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차출로 골키퍼 공백이 발생한 성남 FC 입단을 타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으나, 현역으로 입대하였다가 개인사정의 이유로 같은해 12월에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가 예정된 박준혁이 성남 스쿼드로 복귀하게 되면서 이마저도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마지막과 같았던 성남 입단으로 현역 생활 연장이 이루어지지 않자 김병지는 2016년 7월로 자신의 SNS 계정에 현역에서 은퇴한다는 글을 올렸고, 706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경신하지는 못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골키퍼 치고는 활동 반경이 굉장히 넓다. 마치 스위퍼가 한명 더 있는것 처럼 많이 뛰쳐나오는데 그로 인해 아찔한 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빈도는 낮은 편. 나이가 꽤 있지만 여전히 날렵하고 판단이 빨라서 슈퍼세이브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은퇴 이후 근황[편집]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로는 최태욱과 함께 스포티비 해설위원으로 발탁되어 활동하였으며, 2017년에는 K리그 중계도 담당하였다. 그리고 2017년 11월 19일에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차량 파손도 적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사고 후유증으로 디스크가 파열, 다리 감각 마비로 이어지고 마비된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더딘 회복 상태라는 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에피소드[편집]

  • 2001년 1월 파라과이 전에서 평소처럼(?) 볼을 몰고 중앙선까지 뛰쳐나가는 기행을 선보이자 당시 국가대표 감독인 히딩크감독이 격분, 그 이후 이운재선수가 국가대표 GK로 발탁되면서 김병지 선수는 2인자로 밀려나게 된다. 이후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이운재를 대신해 교체 출장하기도 했는데 하필 호나우딩요가 PK를 차기 직전 상황에서 교체되는 바람에, 꼼짝없이 실점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2002년 이후로는 세대교체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함께 김선수는 국가대표에서 밀려나게 된다.
  •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객원해설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모습이었으나 점차 현역 선수답게 맥을 잘 짚어주는 해설을 하면서 제법 인기가 오르기도. 선수 생활이 끝나고나면 해설을 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기도 하다. 여기에다 칼럼도 가끔 네이트에 기고 하시고는 하는데, 상당히 수준이 높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축구도 잘하고..[10]
  • 현역 유일의 야신클럽 회원이다. 100경기 이상 무실점을 기록한 골키퍼들이 가입하는 클럽인데 현재 K리그에는 신의손코치와 김병지 단 두선수 만이 이 클럽의 회원.
  • 지금은 많이 얌전(?)해지셨지만, 포항 시절까지만 해도 성질도 불같은 골키퍼로 한가닥하셨다. 뚜따랑 주먹다짐을 벌인 사건은 애교일 정도. 때문에 김현석, 송주석, 김병지가 버티고있던 1990년대 울산 현대의 형님 축구는 정말 후덜덜했었다 -_-..; 물론 지금은 온화한 삼촌 카리스마(?)로 젊은 경남 선수단의 중심을 잡아주며 활약 중이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1989 ~ 1990 상무 축구단 상무 축구단 실업축구 군복무
1992.01 ~ 2000.12 현대 호랑이 현대 호랑이 K리그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2001.01 ~ 2005.12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K리그
2006.01 ~ 2008.12 FC GS FC GS K리그
2009.01 ~ 2012.12 경남 FC 경남 FC K리그
2013.01 ~ 2015.12 전남 드래곤즈 전남 드래곤즈 K리그 클래식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 [1] (경남 FC 의 선수소개)


참고[편집]

  1. 2014년 11월 28일 현재 기준. 참고로 200경기 무실점 기록은 2012년 6월 27일 달성하였다.
  2. 이전까지는 신의손이 44세 7개월 9일 출장으로 해당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3. 2014년 11월 28일 현재
  4. 헤딩으로 필드골을 넣은 골키퍼는 한명이 더 있다. 바로 서동명이다. 서동명은 2000년 7월 16일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1-2로 뒤지던 로스타임 2분께 마지막 코너킥 찬스에서 최전방까지 달려나와 동점 헤딩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5. 플레이에 집중하겠단 뜻인지 2011시즌부터는 코칭 스태프 명단에서 빠져버렸다.
  6. 구 부산 소년의집.
  7. 알로이시오고가 본래 고아들을 맡아서 교육하는 기독교계 학교인지라 알로이시오고를 나온 김병지 선수도 고아 출신인줄 아는 사람들이 더러있다. 그러나 여기서 확인할 수있듯 김병지 선수는 고아 출신이 아니다.
  8. 현재의 LS산전
  9. 원래는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기로 내정이 되어있었는데, 현대 호랑이가 9순위로 지명하면서 현대에 가게되었다고 한다.
  10. 네이트 김병지 칼럼 리스트 : http://sports.news.nate.com/spopub/column?cp=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