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진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Rumors (토론 | 기여)님의 2011년 10월 23일 (일) 22:15 판 (새 문서: 200픽셀|섬네일|조재진 '''조재진'''(1981년 7월 9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0년 부터 2004년 그리고 2008년에 [[K리...)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조재진(1981년 7월 9일~)은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00년 부터 2004년 그리고 2008년에 K리그에서 활동했던 공격수이다.


프로필

  • 이름 : 조재진
  • 등록명 : 조재진
  • 출생일 : 1981년 7월 9일
  • 신체 : 185cm / 80kg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유스클럽 : 대신고등학교 졸업
  • 현 소속팀 : 은퇴
  • 등번호 : -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 5 - 0 0 0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1 3 - 0 0 0 0
이천 상무 2002 -
광주 상무 2003 31 - 3 3 5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4 8 - 1 0 0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8 31 - 10 3 4 0
통산(K리그) - 0 - - - -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10월 21일 기준.


유소년 생활

대성중학교, 대신고등학교를 거쳤다. 대신고 시절부터 각광을 받은 유망한 공격수였다.


프로 생활

2000년 드래프트에서 고등학교 지명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게 된다. 입단 당시 수원의 김호의 아이들로 불리는 유망주들 중의 한명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당시 강력한 공격진을 보유한 수원에서 고졸의 젊은 공격수가 출장할 기회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2001년까지 2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조재진은 어린 나이에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그저그런 유망주에 불과했던 조재진은 2002년 상무에 입대한 후로부터는 주전 공격수로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2002년에는 상무가 K2리그에 소속되어있었지만 FA컵과 같은 대회에서 활약을 보여주면서 주목을 받아 올림픽 대표팀에도 처음으로 선발 되기도 했다. 2003년 시즌에는 광주 상무로 K리그에 참가하게 되어 프로무대로 복귀하여 뛰게 되었는데 광주 상무에서는 이동국과 함께 투톱으로 출장하게 되었다.[1] 그렇습니다. 이동국은 조재진 후임이었습니다. -_-;; 그 때 쯤 올림픽 예선을 전승으로 통과하고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루는 등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그를 차세대 공격수로 기대하게 만들었다. 특히 0-3으로 뒤지고 있던 말리와의 경기에서 리플레이를 틀어놓은 듯한 헤딩으로 2골을 기록했던 때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듯. 이렇게 올림픽이 끝나고. 한편 2004년 수원에서는 차범근 감독이 부임했는데 포화 상태인 공격진에서 어울리지 않는 자리인 측면 공격수 등의 포지션을 주문 받았고 그에따라 출장기회가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조재진은 이적을 모색하게 되었고 2004년 여름 이적료 1억엔을 기록하며 J리그의 시미즈 S-펄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2004년 여름 J리그로 옮기자마자 붙박이 주전공격수로 기용되게 된 조재진은 한차원 높은 하드웨어와 기술로 골 폭풍을 몰아치게 된다. 아무래도 K리그의 강력한 수비진에서 벗어나 조금 헐렁했던 J리그의 수비진을 상대로 대놓고 수비수&골키퍼 관광, 절묘한 헤딩 기술, 중거리 슛(!), 드리블 돌파(!!!)까지 선보이면서 꾸준히 득점 랭킹에 이름을 올리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한편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표팀에서 주전 공격수를 맡고 있던 조재진 후임ㅋ이동국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대표팀에서는 급하게 대체 공격수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조재진과 정조국 등이 테스트 받게 되었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정조국에 비해 무난한 활약을 보여준 조재진의 주전 공격수로 낙점 받게 되었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프랑스, 스위스 등의 강팀의 수비진을 상대로 공중볼을 상당히 많이 따낸데다가 헤딩으로 박지성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며 월드컵에서 주목 받은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2007년 까지 시미즈에서 득점력을 과시하던 조재진은 유럽 진출을 모색하게 된다. 물론 그를 원하는 팀이 많이 있었고 거의 확정적이라는 기사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며 입단에 실패하게 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었지만 하지정맥류로 알려진 조재진의 부상은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이라는 증상으로 관절이 어긋나 통증을 계속 유발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이 증상때문에 메디컬 테스트에서 문제가 있던 것이었다. 아무튼 팀을 찾지 못하던 그에게 수원시절부터 그를 지켜보고 있던 최강희 감독에 의해서 전격적으로 2008년 2월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게 된다.


전북으로 이적하게 된 조재진은 전북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하여 전북 구단은 많은 팬의 증가와 언론 노출 등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고 성실한 훈련태도와 함께 구단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프로선수로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최강희 감독은 전반기 좋지 않은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조재진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며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5월 5일 전주성에서 수원과의 경기중 선취골을 넣은 수원의 서동현선수가 전북 서포터 앞에서 도발 세레모니를 하자 이에 대응하여 동점골을 넣은후 어퍼컷 세레모니를 빙자한 주먹감자를 날리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서 전북팬들에게는 영원한 영웅, 수원팬들에게는 영원한 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후반기에 다소 페이스가 떨어졌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10골 3도움의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어 전북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큰 기여를했다. 아무튼 1년 내내 전북에 큰 보탬이 된건 사실. 그리고 2008년 12월 약 40억에 달하는 이적료를 기록하여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게 된다.[2]


2009년 감바 오사카로 이적한 조재진은 활약을 계속 이어갔다. 특히 국내 팬들은 GS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GS 수비진을 철저히 분쇄시킨 경기를 인상깊게 생각할 듯. J리그에서도 25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훈련 중 생긴 부상과 전부터 앓아왔던 증상으로 인해 2010년에는 급격히 몸상태가 나빠지게 되었다. 결국 2010년 감바와의 계약이 끝난 후 2011년 초 정밀 진단을 받고 선수생활을 더 지속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자 미련없이 30세의 나이로 축구선수로서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

헤딩 기술과 몸싸움 능력이 탁월하고 의외로 킥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볼 키핑과 결정력이 조금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북에서는 이 점에 착안 조재진을 미드필더 쪽으로 자주 끌어내리는 움직임을 통해 사이드를 뻥뻥 뚫을 수 있었다고.


에피소드

  • 체격도 좋고 꽤 잘생긴 외모로 리바이스 청바지 광고모델로도 활동하였다.
  • 아디다스 광고문구에 '나는 공을 차는게 아니야. 90분간 리듬을 타는 거지.' 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못할땐 리듬탄타고 까였다.
  • 국대에서 욕먹는건 멀리는 이회택부터 시작해 가깝게는 황선홍 최용수 까지 국가대표팀 공격수의 숙명인듯. ㅠㅠ


경력


같이 보기

참고

  1. 상무 시절, 이동국의 수많은 어시를 조재진, 손정탁 두 분이서 날려먹었다고 한다. ㅠㅠ
  2. 이 이적료를 이용해 데려온 선수가 하대성, 에닝요 등등 09 우승멤버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