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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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의 아이들이란 김호,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이 수원 시절부터 키워오던 유망주들 중 성공한 선수들을 모아서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선수들을 김호의 아이들로 호칭하며 김호 감독의 선수를 키우는 능력을 부각시키는데 애용된다. 다만, 성공한 선수들 못지않게 실패한 김호의 아이들도 많다는 점은 유의해야할듯. 비슷한 용어로 조광래의 아이들(또는 조광래 유치원)이란 단어가 있다.

풋케위키에서는 김호의 아이들을 김호 감독이 한일은행 축구단, 현대 호랑이 축구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전 시티즌 각 팀 감독을 맡을 기간동안, 신인선수로 영입하여 육성하려 시도한 선수들 전원을 가리키는 의미로 상정하고, 이를 분류하고자 한다.


김호의 아이들 목록[편집]

이름 입단 연도 통산 K리그 기록 특기 사항
한일은행 감독 시절 (1984 ~ 1986)
윤덕여 1984년 129경기 3골 1도움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강용국 1985년 24경기 1골 2도움
권혁표 1985년 32경기 4골 K리그 최단시간 골 기록 2위 (19초)
윤성효 1986년 311경기 23골 14도움 부산 아이파크 감독
현대 호랑이 감독 시절 (1988 ~ 1990)
권영대 1989년 15경기 중고신인
이효용 1989년 18경기 1골 2도움 K리그 최초의 고졸 신인 선수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시절 (1996 ~ 2003)
고종수 1996년 171경기 37골 34도움 대전 시티즌 감독
설익찬 1996년 15경기 1골 1도움
이경우 1996년 32경기 3골 1도움
조재진 2000년 78경기 14골 6도움
김두현 2001년 227경기 34골 24도움
손승준 2001년 112경기 4골 4도움
조성환 2001년 223경기 7골 2도움
고창현 2002년 223경기 33골 18도움
손대호 2002년 151경기 4골 3도움
이강진 2002년 112경기 2골 2도움
이종민 2002년 195경기 10골 17도움
조병국 2002년 225경기 7골 4도움
권집 2003년 140경기 3골 8도움 승부조작 혐의로 불구속
남궁웅 2003년 168경기 2골 12도움
박주성 2003년 71경기 2도움
정윤성 2003년 132경기 21골 13도움 승부조작 혐의로 불구속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 (2007 ~ 2009)
[[]]

통산 기록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자료에 의거합니다. 2014년 3월 1일 기준.

대표선수들의 활약[편집]

  • 고종수 :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였던 선수이다. 수원에서는 리그 우승 2회와 1999년 전관왕에 공헌하였고, 국가대표로 1998년 프랑스월드컵,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등에서 활약하였다. 놀라운건 이 때 고종수의 나이가 불과 20대 초반이었다는 것. 장차 더 큰 선수로 성장할꺼라 모두 예상했지만... 2001년 8월 25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였으며 이후 대표팀과는 멀어지게 된다. 2002시즌 종료 후 잉글랜드 풀럼의 입단테스트 제의와 J리그 팀 및 K리그 안양, 전북 등에서의 이적 제의가 빗발쳣는데, 최종 선택은 J리그 교토 퍼플상가 입단이었다. 하지만 베어벡 감독이 고종수를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는 등의 문제로 적응하지 못하며 겉돌았고 수원으로 복귀를 택하고 말았다. 이후 2대1 트레이드를 통해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였다가, 오랜 시간 공백 끝에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였다. 대전에서는 주장을 맡으며 부활하기도 했지만 결국 고질적 부상과 팀과의 불화 등으로 2009년 초 젊은 나이에도 불구,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현재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코치로 활동 중이다.
  • 조재진 : 2000년 대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의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초기 등번호는 43번으로 첫해에 유망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실질적으로 샤샤, 비탈리,등의 용병과 선배들에 밀려 별다른 활약을 못하였다. 2001년에도 큰 활약없이 2군에만 소속되어 축구선수로는 이른 나이에 상무로 군입대를 하게 된다. 이후 상무가 K리그에 참가하게 되어 이름을 알리며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하게 된다. 상무 제대후 수원으로 복귀하였으나 역시 나드손, 마르셀, 등에 밀려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여 J리그 진출을 하게 된다. 이후 J리그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쳐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주전 원톱으로 경기에나서 조별리그 두번째 경기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활약을 펼치며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이 유력했으나 메디컬테스트에서 탈락하며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 그후 준수한 활약으로 전북의 스타로 떠올랐으나 다시 J리그 진출해 활약후 2011년 초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 이경우 : 1996년 주문진수산고를 졸업하고 수원에 입단하였던 스트라이커이다. 수원 입단 후 2군에서 활동하다 일찌감치 경찰청에 입대, 군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전역 후에도 컵대회 포함 3경기 출장에 그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00시즌, 부상 선수들의 속출과 기존 공격수들의 부진 속에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고, 마침내 안양과의 컵대회에서 2골 1도움을 기록, 팀의 5:4 승리를 이끄는 수훈갑으로 선정되었고, 이후 언론과 팬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즌 내내 중용받았다. 하지만 이후로는 안양과의 리그 경기에서 1골을 넣으며 '안양전의 사나이'란 별명을 얻은 것 외에는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이후 2004년까지 1군과 2군을 오가며 가끔 교체 멤버로 이름을 올리다 수원에서 퇴단하였고, 이후 강릉시청에서 활동하다 선수 생활을 정리한듯. 최근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있다.
  • 김두현 : 통진종고 졸업후 2001년 수원에 입단. 입단초기에는 괜찮은 유망주로 평가받으며 간간히 교체멤버로 출전하였으나 2002년부터는 당당히 주전이 된다. 2003년 초 A매치 데뷔를 하며 이후에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펼치며 탄탄대로를 걷는다. 이후 2005년 성남으로 이적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며 다음해에는 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 잉글랜드 챔피언쉽(2부리그) 웨스트 브롬위치에 진출, 최종전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하였으며 승격 이후 1시즌을 프리미어리그에서 소화한뒤 2009년 여름 수원으로 이적하였다. 수원2009년, 2010년 FA컵 2연패에 일조한뒤 병역의무 수행을 위해 경찰청에 입대하였다. 김두현의 입대후 경찰청이 재조명받으며 염기훈, 배기종, 양동현, 김영후 등 대표급 선수들이 입대하기도 하였다.
  • 조병국 : 에어병국.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 시절 잦은 자책골로 자책골의 사나이란 오명이 붙기도 하였지만, K리그에서는 최정상급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 권집 , 정윤성 : '김호의 아이들'에 튄 먹물 한방울이 되어버린 이름.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