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더비
지지대 더비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안양 LG 치타스의 라이벌 경기를 가리키는 말로 수원과 안양 사이에 위치하며 양 지역을 1번국도를 통해 오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지대(遲遲臺) 고개에서 유래되었다. 2003년까지 K리그에 존재했던 라이벌 경기로써, 이제는 안양이 사라지면서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라이벌전이다.
라이벌이 된 계기
원래 수원 삼성은 창단 당시 울산 현대와 앙숙관계에 있었다. 삼성이 창단 준비를 하던 시점부터 재계 라이벌이었던 현대는 삼성의 프로축구 입성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기때문. 이처럼 출발부터 생겼던 두 팀간 앙금은 1996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의 대난투로까지 이어졌던바 있다. 하지만 1999년 울산 vs 수원을 뛰어넘은 희대의 라이벌이 성사되었으니, 바로 안양 LG vs 수원 삼성의 라이벌 매치였다. 그렇다면 위 라이벌은 어떤 계기로 발현된 것일까?
수원 창단 당시 LG와 삼성은 재계간 라이벌 의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안양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않았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이 자리잡을 요소가 다소 부족하다는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1999년 조광래 수원 수석코치가 김호 수원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 안양 LG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라이벌 의식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였다. 조광래는 안양 축구의 부흥을 위해 수원은 꼭 안양이 이긴다라는 말을 하며 수원 vs 안양과의 경기에 하나의 상징성을 부여했고 라이벌 의식은 조금씩 싹터갔다.
이 같은 갈등의식에 결정적인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서정원 사건이었다. 1992년 LG 치타스에 입단하며 선수생활을 시작한 서정원은 1998년 프랑스 리그앙의 RC 스트라스부르그로 이적하면서, K리그로 돌아오게 된다면 안양으로 돌아오겠다.라고 약속했던바 있다. 하지만, 서정원은 98/99시즌 스트라스부르크 감독의 교체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자 국내 복귀를 모색했고, 수원은 서정원에게 당시로서는 최고액인 이적료 50만달러(한화 약 6억원), 연봉 2억원을 제시. 결국 서정원은 수원과 입단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1] 완벽하게 안양을 배신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날 김포공항에서 서정원은 당당히 수원의 유니폼을 입었고, 이를 본 안양팬들은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결국 1999년 슈퍼컵에서 안양은 서정원의 유니폼을 불태우며 분노했고, 서정원은 이에 보란듯이 안양의 수비진을 휘저으며 수원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이를 기점으로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심화되었고 2003년 전년도 안양 소속이었던 뚜따의 이적으로 절정에 달했다. 이는 안양이 없어지기 전인 2003년 말까지 계속되었지만, 2004년 LG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지지대 더비는 종식되었다.
지지대 더비 명승부 열전
1. 2003년 5월 18일 (수원 3-1 안양)
친정팀의 꽃은 비수 두방이 안양을 울렸다. 2003년 5월 18일 수원 월드컵경기장 안양과 수원의 빅매치가 펼쳐졌다. 전반전 팽팽하던 균형의 추는 전반 24분 깨졌다. 남궁웅이 패널티 박스 오른쪽에서 올려준 볼을 서정원이 그림같은 바이시클킥을 터뜨리며 수원이 1:0으로 앞서간 것. 당시 이 경기를 중계하던 강신우 해설위원도 서정원을 향해 이러니 은퇴를 못시키죠?라고 말할 정도로 서정원의 골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안양은 3분뒤인 전반 27분 마에조노의 프리킥을 김동진이 헤딩으로 연결하며 동점골을 터뜨렸다. 전반을 1대1로 마친 양팀은 후반전에서도 팽팽하게 맞섰지만, 후반 41분 친정팀을 향한 비수가 안양의 골문에 꽃혔다. 바로 뚜따였다. 2002년 안양에서 뛰다 방출되어 2003년 라이벌 수원으로 이적한 뚜따는 이병근의 크로스를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하며 역전골을 터뜨렸고, 후반 추가시간이 적용되던 46분, 허리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김영선이 오른쪽에서 올려준 혼신의 크로스를 가비가 논스톱으로 받아넣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2. 2003년 10월 8일 (수원 2-1 안양)
2003시즌 안양은 수원과의 더비 매치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며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고, 수원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장소는 안양의 홈인 안양 종합운동장, 라이벌전 승리에 목마른 안양은 승리를 위해 수비수인 박요셉을 공격수로 올릴 정도로 승리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안양은 초반부터 수원을 몰아 붙였고, 결국 전반 39분 수원 골키퍼 이운재의 펀칭미스를 틈탄 박혁순의 슈팅이 수원 수비수를 맞고 나오자 박요셉이 리바운드 슈팅을 때리며 선취골을 얻어냈다. 이에 기세를 올린 안양은 박혁순의 슈팅이 골대를 맞추는 등 수원을 더욱 몰아 붙였다. 후반 중반이 지나자 조광래 감독은 잠그기를 시작했고, 결국 이것은 큰 패착이 되고 말았다. 후반 41분 서정원의 크로스가 수비수 맞고 뒤로 흐르자 뒤에서 달려들던 나드손이 몸을 날리며 수원은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이에 탄력을 받은 수원은 안양의 수비미스를 틈타 에니오가 돌파 후 나드손에게 기가 막힌 스루패스를 전달했고, 나드손은 가볍게 골키퍼를 넘기는 슈팅을 터뜨리며 역전에 성공하였다. 이미 잠그기에 교체자원을 써버린 안양의 공격의지는 꺾였고, 결국 수원은 안양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2003시즌 4전 3승 1무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 경기는 지지대 더비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3. 2000년 5월 21일 (안양 2-1 수원)'
4. 2003년 9월 14일 (수원 2-0 안양)
5. 2002년 8월 18일 (안양 2-1 수원)
6. 2000년 9월 20일 (안양 3-2 수원)
역대 전적
굵은 글씨팀이 라이벌 매치 승리팀을, 굵은 날짜는 리그, 컵대회 등 결승전을 말한다.
정규 리그
시즌 | 일시 | 홈팀 | 원정팀 | 결과 |
---|---|---|---|---|
1996 | 6월 16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0-2 |
1996 | 7월 25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2-1 |
1996 | 8월 24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0-0 |
1996 | 10월 10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2-0 |
1997 | 6월 28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1-1 |
1997 | 8월 9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0-1 |
1998 | 8월 26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2-1 |
1998 | 9월 20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1, 3-4 (PSO)[2] |
1999 | 6월 2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0-1 |
1999 | 7월 21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0-4 |
1999 | 10월 6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2-3 |
2000 | 5월 21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1 |
2000 | 6월 25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0-1 |
2000 | 9월 30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3-2 |
2001 | 6월 17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0 |
2001 | 7월 25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0 |
2001 | 10월 17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0-1 |
2002 | 7월 14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3-0 |
2002 | 8월 18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1-2 |
2002 | 11월 13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4-1 |
2003 | 5월 18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3-1 |
2003 | 6월 22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2 |
2003 | 9월 14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2-0 |
2003 | 10월 8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2 |
리그컵
시즌 | 일시 | 홈팀 | 원정팀 | 결과 |
---|---|---|---|---|
1996 | 4월 10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2-2 |
1997 | 4월 2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4-4 |
1998 | 3월 31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1-0 |
1998 | 4월 4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0 |
1998 | 5월 26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1, 2-3 (PSO)[3] |
1999 | 8월 11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중립) | 안양 LG 치타스 (중립) | 4-2 |
2000 | 3월 29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0-0, 4-5 (PSO)[4] |
2000 | 4월 9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5-4 |
2001 | 4월 8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0 |
2001 | 5월 2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1-0 |
FA컵
시즌 | 일시 | 홈팀 | 원정팀 | 결과 |
---|---|---|---|---|
1997 | 11월 25일 | 안양 LG 치타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2, 3-2 (PSO)[5] |
슈퍼컵
시즌 | 일시 | 홈팀 | 원정팀 | 결과 |
---|---|---|---|---|
1999 | 3월 20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5-1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시즌 | 일시 | 홈팀 | 원정팀 | 결과 |
---|---|---|---|---|
2001-02 | 2월 17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0-0 |
2001-02 | 4월 5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안양 LG 치타스 | 0-0, 4-2 (PSO)[6] |
총계
대회 | 경기 수 | 수원 승 | 무승부 | 안양 승 | 수원 득점 | 안양 득점 |
---|---|---|---|---|---|---|
K리그 | 24 | 11 | 4 | 9 | 35 | 25 |
K리그 컵 | 10 | 4 | 4 | 2 | 18 | 15 |
FA컵 | 1 | 0 | 1 | 0 | 2 | 2 |
슈퍼컵 | 1 | 1 | 0 | 0 | 5 | 1 |
아챔 | 2 | 0 | 2 | 0 | 0 | 0 |
전체 | 38 | 16 | 11 | 11 | 60 | 43 |
같이 보기
참고
- ↑ LG는 1992년 서정원과 입단계약을 체결할 당시, 서선수가 해외에 진출하게 되면 이적료의 절반을 서정원에게 주고 대신 국내에 복귀할 때는 안양 LG로 복귀한다'는 조항을 삽입해둔 상태였다, 서정원이 프랑스 RC 스트라스부르로 옮길 때 안양은 이적료의 절반인 50만달러를 서선수에게 주었지만, 서정원은 이후 계약을 위반하고 수원 삼성과 계약해버렸던것. 이에 안양 LG측은 7억원의 이적료 반환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서정원은 소송에서 패소하며 3억원을 내줘야만 했다.
- ↑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안양 LG 치타스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하였다.
- ↑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안양 LG 치타스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하였다.
- ↑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안양 LG 치타스와 0-0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하였다.
- ↑ 안양 LG 치타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하였다.
- ↑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안양 LG 치타스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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