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Belong (토론 | 기여)님의 2014년 12월 23일 (화) 20:08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전북 현대 감독 최강희

최강희(1959년 4월 12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이다.

선수 생활 은퇴 후 1993년부터 현재까지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지휘봉을 잡아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2012년부터 2013년 6월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활동하기도 하였다.




프로필

  • 이름 : 최강희
  • 출생일 : 1959년 4월 12일
  • 유스클럽 : 우신고등학교 졸업
  • 신체 : 174cm / 68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88년 서울 올림픽 본선 대표
1988년 아시안컵 대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대표
1988년 ~ 199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33경기 출장)
  • 수상 경력
1985년 K리그 대상 모범상 수상
1986년 프로축구선수권대회 MVP[1]
1985년, 1986년, 1991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수상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선수 기록 (실업 포함)
소속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제철 돌고래 1983 3 0 0 0 0 0
현대 호랑이 1984 26 1 0 2 1 0
1985 21 0 0 2 0 0
1986 31 1 0 3 1 0
1987 25 0 3 6 3 0
1988 20 1 0 2 1 0
1989 9 0 0 0 1 0
1990 13 1 2 3 2 1
1991 37 5 5 4 2 0
1992 20 6 0 0 1 0
통산 (K리그) - 205 15 10 22 12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9월 23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

  • 지도자 경력
연도 경력
1995 ~ 1997 수원 삼성 블루윙즈 트레이너
1998 ~ 2001 코치
2003 ~ 200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코치
2005 ~ 2010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2012 ~ 2013.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2013.6 ~ 2016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 주요 수상 경력
연도 경력
2005년 전북 현대 모터스 대한민국 FA컵 우승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09년 K리그 우승, K리그 올해의 감독상
2011년 K리그 우승
K리그 올해의 감독상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석권
2014년 K리그 클래식 우승
K리그 올해의 감독상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ACL
전북 현대 모터스 2005[2] 2 3 7 12위 12위 우승
2006 11 13 15 11위 6위 16강 우승
2007 12 12 12 8위 조별예선 16강 8강
2008 17 8 14 4위 4강 8강 -
2009 19 8 7 우승 조별예선 4강 -
2010 22 7 9 3위 준우승 8강 8강
2011 20 9 4 우승 8강 16강 준우승
2013 12 6 6 3위 - 준우승 -
2014 24 9 5 우승 - 4강 16강
통산 (K리그) - 139 75 80 K리그 및 K리그 클래식 우승 3회,
FA컵 우승 1회, ACL 우승 1회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12월 23일 기준.


유소년 생활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서울 용두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나 중학교때 축구부가 없는 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축구를 3년간 쉬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신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전국대회도 우승하는등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신고 시절 술, 담배를 하면서 좋지못한 모습을 보여 대학진학에 실패하였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였다고 한다.[3] 하지만 최강희 영입을 위해 한일은행이 우신고 선수를 9명이나 받아줬던걸 보면 실력 하나는 확실했던듯.


프로 생활

1979년 고졸 후, 실업팀인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여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 병역의무 수행을 위해 육군 충의팀에 3년간 복무하였으며, 전역 후 1983년 한일은행 축구단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당시 한일은행 축구단 감독이었던 김호를 만나 본격적으로 축구에 눈을 뜨게 된다. 83년 한일은행을 비롯한 여러 실업축구팀들은 실업축구대회 일정이 없는 기간동안, 수퍼리그에 참가하는 프로팀들에게 선수를 임대시키고는 했는데 최강희 선수는 포항제철에 임대되어 3경기 출장하기도 하였다. 수퍼리그에서의 활약은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한일은행에서의 최선수는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며 1983년 팀을 실업선수권 정상에 등극시키는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984년, 신생 프로 축구팀이었던 현대 호랑이에 창단 멤버로 참가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언제나 노력하고 성실한 플레이 덕분인지 현대 호랑이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현대에서 9시즌 동안 활약하며 1986년 프로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수상, 프로축구 베스트 11에 4회 선정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청소년대표 경력 하나 없는 그에게 늦은 나이인 28세에 국가대표팀으로 처음 선발되는 기회가 주어졌고, 88 서울 올림픽, 90 이탈리아 월드컵 등 큰 대회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1992년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4]


선수 시절 플레이 스타일

스피드가 빠른데다 활동량도 엄청나고 게다가 체력까지 좋았다고 한다. 직접 본 입장이 아니라.. 그의 플레이를 보신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90분 동안 쉬지않고 찰거머리처럼 수비하러 뛰어다니는 선수였다고 한다. 얼마나 끈질기게 수비를 했던지 최강희 선수가 막고 있는 측면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은퇴 이후

은퇴 후 독일, 잉글랜드 등으로 유학을 떠나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였다. 선수 시절의 스승이었던 김호 감독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트레이너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김호 감독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원의 성공시대를 이끌어 간 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복귀하였다.[5] 그 후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2005년 여름 조윤환 감독의 사임으로 공석이었던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전격 선임되었다. 몇년간 부진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전북이었기 때문에 그의 감독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2005년 '팀도 아니었던' 전북을 이끌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더니, 2006년에는 얇은 선수층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러번의 역전승을 통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들을 데려다가 다시 전성기의 기량을 찾게 해주는 재활공장장의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축구 외적으로도 많은 일을 했는데,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를 설득해 지원을 받아내기도 하고 팬들과의 소통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노력들이 합쳐져 현재 전북을 우승을 다투는 강팀으로 만들어냈다.


감독 스타일

  • 닥치고 공격. 수비불안의 리스크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격전술로 일관. 3장의 교체카드는 거의 모든경기에 늘 3명의 공격수로 이루어져있다. 사실 지금처럼 스쿼드가 좋지 않은 시절에는 전형적인 카운터 전술이 많았다. 빠른 윙백이나 윙포를 이용해서 카운터를 노리는 경기가 많았다. 뭐 지금은 미들장악부터 시작하고 닥공하지만;;
  • 선수시절 측면에서 뛰어서 그런지 측면에서의 플레이를 상당히 중시 하는듯.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윙덕후다.


에피소드

  • 선수시절 취미는 놀랍게도 만화 그리기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리고 있는지는 불명. 여기에 게임도 즐겨하시는듯. 스타크래프트 주종족은 테란이라고 한다.
  • 2006년 놀라운 역전승으로 아시아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한 최강희 감독을 두고 중국 언론에서는 강희대제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 또다른 별명은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연습구장과 숙소가 있는 완주군 봉동읍의 이름을 딴 봉동이장이다. 이유는 선수들이나 팬들에게 스스럼 없이 대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 여서 그런듯 하다. 글 쓸때 본인을 이장이라고 자꾸 하는걸보면 이 별명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다.
  • 경기장에서는 골을 넣든 먹든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유명하다.[6] 선수들 긴장시키려고 그런다는데 과연. 하지만 경기장에서의 언제나 굳은 표정과 달리 인터뷰 등에서는 상당히 재치있는 달변가이다.
  • 여담으로 절대 (더이상) 늙지않는 동안의 소유자. 현역 선수시절 얼굴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있다. 옆의 사진을 보라. 1990년에 찍은 사진이다. ㄷㄷㄷ..


경력

  • 1980 ~ 1982 : 충의 (육군) / 실업축구


갤러리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1. K리그 컵대회 MVP라 생각하면된다.
  2. 조윤환 감독이 05시즌 중반에 경질된뒤 잔여경기를 지휘해 얻은 성적이다.
  3. 이후 1987년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으면서 최강희 씨는 술, 담배를 일절 끊고 축구에 매진하셨다고 한다. 이후 1988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4. 이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현대의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갓 현대 감독으로 데뷔한 차범근과 고참 선수인 최강희 사이의 나이차는 6살밖에 나지않아 차범근 감독의 선수단 장악에 있어 최강희가 껄끄러운 상대였음이 당연했을듯. (관련기사 참고 : [1])
  5. 코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았는데 대표팀 코치 생활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듯, 이후에도 수차례 인터뷰에서 국대는 성격상 안맡는다고 밝힘.
  6. 일명 차봉남이라고... 가운 자(?).


  1. 넘겨주기 틀:K리그 1985 베스트 11
  2. 넘겨주기 틀:K리그 1986 베스트 11
  3. 넘겨주기 틀:K리그 1988 베스트 11

    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