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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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공고 감독 시절 정종덕
ⓒ월간축구

정종덕 (1943년 ~ 2016년 2월 16일)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정종덕
  • 출생일 : 1943년
  • 사망일 : 2016년 2월 16일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68 경신중학교 감독
1969 ~ 1970 경신고등학교
1971 ~ 1975 안양공고
1975 ~ 1976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코치
1976 ~ 1980 계성고등학교 감독
1980 ~ 2000 건국대학교
2001 ~ 2002 총감독
2005 ~ 포항 스틸러스 기술고문
2012 춘천기계공고 감독


유소년 시절[편집]

경기도 청평 출신으로 경신고등학교 시절까지 축구 선수로 생활하였으나, 작은 체구에 허리 부상 등을 이유로 일찍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다. 이후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하여 교사 자격증을 취득, 일반체육 교사로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건국대 부임 이전[편집]

경희대를 졸업한 정종덕 씨에게 경신고 시절 은사인 장운수 당시 경신중ㆍ경신고 감독[1]이 경신중 감독직을 제의하면서, 그는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걷게된다.[2] 이 때 차범근김강남김성남홍성호 등을 발굴해내며 재능을 인정받은 정감독은 이후 경신중을 거쳐 경신고 감독직을 맡기도 했으며 1971년 안양공고 축구부 감독에 부임하면서 전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당시 안양공고 축구부는 창단 2년차에 불과했으나, 정감독 부임 후 3년 만인 1973년 건국대학교총장배 전국고교축구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1974년에는 대구MBC배 전국고교축구대회부산MBC배 전국고교축구대회청룡기 전국고교축구대회전국체전 등 무려 5개 대회 우승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고, 1975년과 1976년에도 6개 대회 우승 타이틀을 가져가며 안양공고 축구부의 전성기를 닦았다. 이 때의 활약을 토대로 1975년 겨울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코치로 발돋움하기도 했던 정씨는, 1976년 AFC U-19 챔피언십에서 한국 청소년대표팀을 3위에 랭크시키는 공로를 세운 뒤 1976년 6월 대구 계성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1980년까지 활동하였다.


건국대 감독 생활[편집]

1980년 건국대 축구부 지휘봉을 잡았다.[3] 이후 정씨는 고교축구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던 경력을 십분 활용, 고려대연세대한양대 등 유수의 대학 축구부들이 스카우트 하지않고 외면한 선수들을 발굴, 옥석으로 키워내며 대학 축구계의 명장으로 거듭난다. 그의 손에서 키워진 선수로는 황선홍, 고정운, 유승관, 윤상철, 이상윤, 유상철, 공문배, 박충균, 이영표, 신병호, 현영민 등이 있으며, 특히 황선홍은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소속팀 성적이 좋질않아 여타 대학이 관심을 갖지 않던 것을 정감독이 스카우트해 성공시킨 케이스였고, 고정운ㆍ유승관 역시 소속팀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정감독이 직접 스카우트해와 성공시킨 케이스로 알려져 있다.[4] 여기에 건국대 축구부 성적도 일신시키는데 성공, 선수 발굴과 성적 확보라는 2마리 토끼를 잡은 정감독은 2000년까지 무려 20년 넘는 세월을 건국대 축구부 감독으로 재임하며 일가를 구축하였으며, 1993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이사로 재임하며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한국대학대표팀을 이끌고 준우승을 거두는 등 다양한 부문에서 능력을 발휘하였다.


건국대 감독 이후[편집]

2000년 부산 아이콘스 감독 제의가 오르내리기도 하였으나 고사한 뒤 건국대 감독에서도 물러나 건국대 명예감독으로 2002년까지 재임하였으며 2002년 건대 명예감독직에서도 물러난 뒤에는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 2005년 포항 스틸러스의 기술고문으로 부임해 신인 선수 발굴 등에 일조하였으며 2012년에는 유상철 감독이 물러난 뒤 공석이 되었던 춘천기계공고 축구부 감독으로 복귀, 30여 년만에 고교축구계 감독으로 복귀하며 작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망[편집]

이처럼 노년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정종덕 씨는 2016년 2월 16일 숨을 거두었다. 향년 73세.


에피소드[편집]

  • 선수들을 관리하는데 철저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안양공고 시절부터 선수들과 함께 합숙 생활을 하며 지도하였고, 건국대 시절에도 선수들을 관리하기 위해 상벌제도를 적극 운영하였으며, 특히 금연ㆍ금주를 강조하였다고 한다.
  • 선수들에게 엄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ㆍ제공하는데도 능했다고 한다. 일례로 황선홍, 윤상철, 신병호 등 스트라이커 들에게는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골감각을 스스로 끌어올리는데 집중케했고, 스트라이커로 들어왔던 유상철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한 사례나 허리 디스크가 있었던 신병호 선수는 체력 훈련을 극도로 제한시켰던 사례 등, 선수별로 개별 관리에 힘을 쏟았다는 평.
  • 정종덕 씨의 친동생인 정종관[5] 씨도 축구 선수이자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에피소드인, 건국대 시절 이종범 축구부 스카우트 제의설(?)의 주인공이 정종덕 씨일 가능성이 높다. 이종범 선수가 건국대 89학번인데 이 때 건국대 축구부 감독이 정종덕 씨이기 때문. 이종범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90학번 후배인 유상철 선수를 벗겨내며 골을 성공시키던 자신을 보고 건국대 축구부 감독이 '국가대표 시켜줄테니 축구부 오지 않으련?' 하고 제의했다고.. 이후 축구부 감독은, 건국대 야구부 감독에게 '이종범이란 학생 너네 안쓸거면 축구부로 줘라'고 영입 제의(?)를 넣었으나, 당시 건국대 야구부 전력의 반이 이종범이라며 손사레를 쳤다는 카더라가 전해진다. 축구계는 제2의 황선홍 or 고정운을 눈앞에서 놓쳤던 것일지도..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당시 자료들은 학원 축구부 감독들은 모두 '코치'라 불렀다. 다만 오늘날 사용되는 감독ㆍ코치 의미와 혼동이 있을듯 하여 이하는 모두 감독으로 표기한다.
  2. 묘하게도 정종덕 씨에게 감독 자리를 주선한 장운수 감독도 1958년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경신중학교 감독으로 부임, 이후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 오늘날까지 명감독으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스승과 제자 모두, 비슷한 삶의 궤적을 이어갔던 셈.
  3. 건국대 측은 정씨가 1975년 건대총장배 고교축구대회 우승을 하던 시절부터 그의 지도력에 주목, 건대 축구부 감독직을 제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씨가 대한민국 청소년대표팀 코치 부임이 확정된 시점이었던지라 제의를 고사했었으나, 1979년 재차 제의한 끝에 그를 영입하는데 성공하였었다고..
  4. 다만 고정운ㆍ유승관은 2학년 시절 이리고를 전국고교축구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대활약을 선보였음에도, 3학년 때 별다른 성적을 못냈다는 이유로 타 대학이 외면한 케이스였다. 고교축구를 꾸준히 지켜봐온 정감독은 두 선수가 3학년 때 성적을 못낸 이유가 실력 저하가 아니라 이리고 선수층이 극도로 얇아졌기 때문임을 알고 두 선수를 냉큼 데려가 성공시켰다.
  5. 승부조작 연루자인 정종관과 동명이인이다. 연세대학교를 나와 한일은행에 입단해 활동한 뒤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현재 청평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