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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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절 한교원

한교원(1990년 6월 15일~)는 대한민국 출신의 축구선수로 2011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격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한교원
  • 출생일 : 1990년 6월 15일
  • 신체 : 182cm / 74kg
  • 국가대표 경력
201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2015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4경기 출장 1골)[1]
  • 프로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K리그 2011 29 22 3 2 2 0
2012 28 10 6 2 4 0
클래식 2013 36 14 6 2 8 0
Teamlogo jbfc2018.png 전북 현대 모터스 2014 32 20 11 3 1 0
2015 26 16 1 4 3 1
2016
통산(K리그) 클래식 - 151 72 27 13 18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6년 1월 9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생활[편집]

2009년 창단한 조선이공대학 축구부가 배출한 최초의 프로 축구선수이다. 충주상고를 졸업하고, 본래 조선대학교 축구부에 입단하려했으나 조대 축구부 정원이 꽉차 하는수없이 조선대와 같은 재단인 조선이공대 축구부에 입단하였었다고.. 조선이공대에서 2010년 U리그 호남권역 지역리그 득점 3위 (20경기 출장 18골) 를 기록해 주목을 받았다.[2]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편집]

2011년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5순위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허정무 감독에게 낙점받으며, 2011 K리그 개막전 라운드에서부터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데뷔전은 1달여뒤인 4월 3일에 치루었다. 이후 4월 9일 對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유병수 선수의 골을 어시스트하였으며, 4월 30일에는 선발 출장해 전반 1분만에 장원석 선수의 프리킥을 머리를 받아넣어 데뷔골을 신고하기에 이른다. [3] 이후 5월 22일 對 광주 FC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출장하여 경기장에 들어오자마자 팀의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영웅으로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전후반 내내 버벅대던 김명운, 유준수와 극명히 비교되며 호평을 얻었다. 이후, 인천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자리매김한 한교원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2012년 런던 올림픽대표 강화훈련에도 참가하며 승승장구하였다. 올림픽대표 차출 이후로는 공격 포인트 기록은 약간 주춤한 상태. 하지만 여전히 다방면에 걸쳐 활약중이다. 다만 신인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평도 들었다. 요컨대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자원이었던 셈.

2년차를 맞이한 2012시즌에는 초반부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되기도 하였으나, 부상 휴유증을 털고 부산 전에서 시즌 첫 골을 뽑아내면서 주전으로 발돋움 하였다. 이후 GS와의 홈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완전히 주전으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 시즌은 최전방에서 홀로 서 있었어야 했지만, 이번 시즌은 설기현이 최전방을 담당하고 있어서, 오른쪽 윙으로 나서 설기현과 스위칭 플레이를 하며 골문을 노리면서 플레이가 한층 좋아졌다는 평. 2012시즌 6골을 기록하며 팀 내에서 세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하였다. 이후 2014시즌을 앞두고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전북 현대 모터스 시절[편집]

2014 시즌[편집]

2014년 2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對 요코하마 F. 마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엄청난 활동량과 돌파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바로 다음 경기인 부산전에서도 환상적인 바이시클 킥으로 또 한번 놀라게 했으나.. 줄곧 지적되어오던 크로스 타이밍에 약점을 보여주며, 이 2경기를 마지막으로 내리막을 걷게 된다. 연계 플레이 실종과 슈팅 타이밍 문제 등 팬들의 질타를 받으며, 14시즌 전반기 내내 전북 팬들의 최고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는데.. 다만 최강희 감독은 이런 분위기 속에도 한교원 선수를 끝까지 기용하며 믿음을 보였던바 있다.

그리고 월드컵 휴식기를 지나 재개된 2014시즌 후반기, 한선수는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4] 전반기에 비해 놀랄 정도로 몸놀림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문전쇄도 능력이 향상되었다. 이동국 선수가 최전방에서 아래로 살짝 내려가 볼배급을 해주면 한교원 선수가 빠르게 문전쇄도를 하는 플레이를 통해 상대 수비들을 벗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 對 경남 전에서는 완벽하지 않지만 크로스를 올려서 이상협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팀 내 공격 전술에 녹아들며 전북의 통산 3번째 우승에 공헌하는데도 성공하였다.


2015 시즌[편집]

2015시즌, 여전히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을 하고 있다. 작년에 비해 공격포인트와 출전시간은 줄었으나 쓰임새는 간결해진 편으로 주로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역습 가담 형태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는 건 분명 공격수로써 아쉬운 부분이었고, 결국 그 아쉬움이 대형사고를 낳았다.

징계가 끝나고 복귀한 이후 최강희 감독은 꾸준히 경기를 투입하면서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뢰를 보냈지만, 한 달 넘게 쉰 탓인지 경기력이 확실히 이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후반기에는 이근호와의 포지션 경쟁에서 밀린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더 큰 성장을 기대했던 본인이나 팬에게나 여러모로 아쉬운 시즌.


국가대표 생활[편집]

2014년 7월 말부터 공격 포인트를 잇달아 기록하면서, 국가대표의 주목을 받은 한선수는 2014년 9월, 신태용 국가대표 감독대행에 의해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되는데 성공하였으며[5] 이후 꾸준히 출장 기회를 부여받으며 대표팀의 공격 옵션으로 실험을 받았다. 이후 2014년 11월 14일에는 요르단을 상대로 A매치 데뷔골까지 성공시키며, 앞으로의 장래를 밝게 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AFC 아시안컵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 슈팅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상당히 좋다. 다양한 상황에서도 유효 슈팅을 만들어내는게 꽤나 위협적인듯. 근데 골이 안 들어가는게 아이러니.. 활동량과 체력은 자칭 유병수보다 좋다고 했을 정도로 좋은 편이나, 오프사이드 트랩에 자주 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유병수만한 파괴력은 찾기 힘드나, 인천 특유의 앏은 스쿼드 덕에 센터백, 풀백, 윙백, 윙어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팀 내 만능 유틸리티 자원으로 등극했다는 평. 2012시즌에는 볼에 대한 집착도 늘어났고, 주로 오른쪽 윙으로 나서 빠른 발을 선보였다.[6]
  • 2012시즌 들어서는 2011시즌과 달리 상대 수비를 두고 자주 접으면서 페인팅을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드리블을 할때, 좌우로 빠지는 플레이보다 전진하는 스타일이라는 평. 특히 측면 라인 활용을 잘하는 선수로, 측면 터치라인을 줄타듯이 드리블 하는 장면도 많이 보여줬다. 간결한 페인팅을 섞어서 선수를 제치고, 스피드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이다.
  • 그러나 판단력이라던가, 시야부분과 크로스는 보완해야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순간에 무리하게 제치려다 볼을 뺏길때도 있으며, 더 좋은 위치의 동료에게 패스를 주면 좋은 찬스가 나는 상황에도 본인이 제쳐서 슛을 하여 어이없게 다 막히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여기에 크로스를 할때의 타이밍은 무난한데, 그 질이 나쁜 편. 전북 입단 초기에는 이 단점들이 두드러지면서 욕을 먹고는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선수의 장기가 드러나면서 평가를 반등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에피소드[편집]

  • 2012 시즌까지, K리그 무대에서 도합 9골[7]을 기록중인데 이중에 5골이 수중전에서 기록한 골이다. 심지어 K리그 데뷔골도 수중전에서 나왔고 첫 멀티골도 수중전에서 나왔다.
  • 플레이 성향상, 강력한 멘탈을 지닐 것으로 보였으나 굉장히 여린 타입으로 밝혀졌다. 전북 입단 후 부진이 이어지자 맘고생이 심했는듯 아래 링크와 같은 인터뷰를 남기기도 하였다. [8]
  • 2014년 7월, FA컵 16강 對 울산과의 경기에서 킹콩 세레모니를 선보였던 적이 있다.[9]


박대한 가격 사건[편집]

2015년 5월 23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박대한에게 주먹으로 가격했는데, 이게 미스가 나자 다시 한번 재차 주먹으로 가격, 결국 퇴장 당하고 한퀴아오라는 아주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특히나 전 소속팀인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를 향한 폭행이었다는 점에서 그 논란의 정도는 더 컸으며, 평소 행실이 착하기로 알려졌기에 이러한 행동의 원인에 대한 관심도 컸다.[10] 사건 직후 전북은 그를 베이징 궈안 원정에 포함시켰으나 이것이 논란이 되자 공항에서 명단에서 제외하고 클럽하우스로 돌려보냈으며, 추가로 자체징계 벌금 2,000만원과 사회봉사 80시간을 부과하면서 다음 날인 24일 한선수의 자필 사과문을 게재하였다.[11] 한국프로축구연맹은 5월 28일 상벌위원회를 통해 추가적으로 6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600만원을 부과했다.[12] 이로 인해 전반기 막바지 전북의 팀 운영은 매우 꼬였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에닝요가 성적 부진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하면서 한교원의 이러한 행동으로 팀이 치러야 하는 댓가는 더욱 커졌다.

추가로 이범영의 잔디 사건과 함께 '과연 구단이 선수에게 사과문과 같은 형식의 문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일부는 당연히 필요하다는 입장이었고, 일부는 너무 유치한 방법이고 인터뷰나 다른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논쟁이었다.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11 ~ 2013 대한민국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대한민국 K리그, K리그 클래식
2014 ~ 현 재 대한민국 Teamlogo jbfc2018.png 전북 현대 모터스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2014년 11월 15일 현재 기준.
  2. 참고로, 한교원이 인천으로 이적한 이후 조선이공대는 2011년 U리그에서 1경기도 이기지 못한 채 몰락해버렸다. ㄷㄷㄷ
  3. 다만 한선수의 데뷔골은 팀이 2:6으로 대패하면서 빛이 바랬다.
  4. 후반기 시작 후 7월 22일 현재, 리그에서만 4경기 2골 1도움를 기록 중이며 FA컵을 포함하면 5경기 3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5. 한교원 선수의 생애 첫 국가대표 발탁이자, 조선이공대 축구부 역사상 최초의 국가대표 발탁자였다.
  6. 전북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빛을 발해서 수비능력은 좋다. 상대를 마크하는 능력이, 특유의 활동량과 결합하면서 압박 능력은 수준급이다.
  7. 2011시즌 3골, 2012시즌 6골
  8. '저 욕 많이 먹고 있죠?'
  9. 킹콩 세레모니 비화
  10. 최강희 감독은 이에 대해 면담 등을 통해 본인이 변화된 환경에 처한 선수를 좀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부족했다고 밝혔다.
  11. 전북, 한교원에 자체 '중징계'...ACL 제외·벌금·봉사
  12. 상벌위원회 결과 (전북 한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