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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선수시절허정무.JPG|300픽셀|섬네일|1986년 월드컵 | [[File:선수시절허정무.JPG|300픽셀|섬네일|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진출을 결정짓는 골을 성공시킨 허정무]] | ||
'''허정무'''(許丁茂, 1955년 1월 13일 ~ )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현재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과 [[MBC]] 축구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PSV 에인트호번]] 등에서 활약했으며 80년대 한국 축구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해 한국인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월드컵 16강에 | '''허정무'''(許丁茂, 1955년 1월 13일 ~ )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현재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과 [[MBC]] 축구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PSV 에인트호번]] 등에서 활약했으며 80년대 한국 축구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해 '''한국인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하였으며, 휴식기간을 갖기 위해 2010년 7월 2일 연임을 포기하였다. 이후 한 달 반 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 [[인천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 ||
== 프로필 == | == 프로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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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 : [[198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 ||
: [[1986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표 | : [[1986년 FIFA 월드컵]] 본선 대표 | ||
: (통산 A매치 | : '''(통산 A매치 84경기 출장 25골)''' | ||
* 수상 경력 | * 수상 경력 | ||
: 1979년 [[체육훈장]] 백마장 | : 1979년 [[체육훈장]] 백마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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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번호]] : - | * [[등번호]]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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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K리그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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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1월 1일 기준.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1월 1일 기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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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생활 == | == 선수 생활 == | ||
=== 유소년 생활 === | === 유소년 생활 === | ||
전남 | 전남 진도군 출신으로 [[영등포공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영등포공고 시절부터 [[최종덕]], [[조광래]] 등과 함께 무서운 새내기로 주목을 받았던바 있으며, 연세대학교 재학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지녀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 ||
=== 프로 생활 === | === 프로 생활 === | ||
1978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 1978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쌓다가, 곧바로 [[해병대]]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 ||
[[차범근]]이 1979년 7월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여 활약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1980년]] 7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하였다. 팀 적응기인 반년 정도 교체 멤버로 뛰다가 그 뒤로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고, 주로 미드필더로 뛰면서 3시즌 동안 77경기에서 15골을 넣고 1982-83시즌 팀의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부인 문제로 인해 [[1983년]] 국내로 복귀하게 되었다. [[1984년]] [[K리그]]의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고, 1986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 [[차범근]]이 1979년 7월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여 활약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1980년]] 7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하였다. 팀 적응기인 반년 정도 교체 멤버로 뛰다가 그 뒤로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고, 주로 미드필더로 뛰면서 3시즌 동안 77경기에서 15골을 넣고 1982-83시즌 팀의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부인 문제로 인해 [[1983년]] 국내로 복귀하게 되었다. [[1984년]] [[K리그]]의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고, 1986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 ||
=== 국가 대표 생활 === | === 국가 대표 생활 === | ||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본선 1차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전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끈질기게 마크하였는데 이때 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차 마라도나가 그라운드에 나뒹굴게 되자 한국 축구는 '태권축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또한 본선 3차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A매치]] 84경기에서 25골을 넣었다. |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본선 1차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전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끈질기게 마크하였는데 이때 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차 마라도나가 그라운드에 나뒹굴게 되자 한국 축구는 '태권축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또한 본선 3차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A매치]] 84경기에서 25골을 넣었다. | ||
== 지도자 생활 == | == 지도자 생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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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포항 제철 아톰즈]]에 코치로 입단하여 활동하다 [[1993년]] [[울산 현대|현대 호랑이]]로 옮겼다. [[1990년 FIFA 월드컵]]에는 트레이너,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코치로서 각각 참가하였다. | [[1991년]]에 [[포항 제철 아톰즈]]에 코치로 입단하여 활동하다 [[1993년]] [[울산 현대|현대 호랑이]]로 옮겼다. [[1990년 FIFA 월드컵]]에는 트레이너,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코치로서 각각 참가하였다. | ||
[[1993년]] [[포항 아톰즈]] 감독에 취임하여 그 해 [[아디다스 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5년]] 시즌 도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지만, 그 해 다시 [[ | [[1993년]] [[포항 아톰즈]] 감독에 취임하여 그 해 [[아디다스 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5년]] 시즌 도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지만, 그 해 다시 [[K리그]]로 복귀하여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97년]] 팀의 [[K-리그]] 준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8년]] 시즌 도중에 [[1998년 FIFA 월드컵]]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도 함께 맡게 되었다. | ||
그러나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인해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 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발탁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세계적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얻은 2승 1패라는 성적은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이 얻은 승점 중에 가장 높은 점수라는 데 의의가 있다. | 그러나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인해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 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발탁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세계적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얻은 2승 1패라는 성적은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이 얻은 승점 중에 가장 높은 점수라는 데 의의가 있다. | ||
=== 2000년 이후 === | === 2000년 이후 ===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사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비해 [[대한축구협회]] 기술 고문을 맡았다. 그 뒤 [[2004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 해 6월에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예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다시 취임하여 7년 만에 복귀하였다. [[2006년]] [[8월 30일]] [[K-리그]] 통산 9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으며, [[2006년]]과 [[2007년]] 팀의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를 이끌었고, [[2006년]] [[FA컵 (대한민국)|FA컵]] 당시에는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핌 페르베이크]] 감독의 후임으로 2007년 12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다시 선임되어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와 [[요하네스 본프레러]], [[딕 아드보카트]]와 [[핌 페르베이크]]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년여에 걸쳐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사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비해 [[대한축구협회]] 기술 고문을 맡았다. 그 뒤 [[2004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 해 6월에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예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다시 취임하여 7년 만에 복귀하였다. [[2006년]] [[8월 30일]] [[K-리그]] 통산 9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으며, [[2006년]]과 [[2007년]] 팀의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를 이끌었고, [[2006년]] [[FA컵 (대한민국)|FA컵]] 당시에는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핌 페르베이크]] 감독의 후임으로 2007년 12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다시 선임되어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와 [[요하네스 본프레러]], [[딕 아드보카트]]와 [[핌 페르베이크]]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년여에 걸쳐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 ||
=== 2010년 월드컵 대장정 === | === 2010년 월드컵 대장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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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루과이에 1:2로 패배해 대한민국 대표팀은 16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팀들 사이에서 그것도 원정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했다는 의의가 있으며, 이를 국내 지도자인 허정무 감독이 일궈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새로 쓴 대회였다. 대한축구협회에서는 허정무 감독의 유임을 시사했지만, 허정무 감독 본인은 재계약을 포기했다. | 결국 우루과이에 1:2로 패배해 대한민국 대표팀은 16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팀들 사이에서 그것도 원정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했다는 의의가 있으며, 이를 국내 지도자인 허정무 감독이 일궈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새로 쓴 대회였다. 대한축구협회에서는 허정무 감독의 유임을 시사했지만, 허정무 감독 본인은 재계약을 포기했다. | ||
=== 인천 유나이티드 === | === 인천 유나이티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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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4일 부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서 첫 경기를 치루었으며, [[부산 아이파크]]와의 데뷔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였으며 두번째 경기인 [[광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마저 후반 45분에 동점골을 먹히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다. 다만 3번째 경기인 [[대구 FC]]와의 22라운드 경기에서 4-1로 완승하며 인천에서의 첫 승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23라운드 [[FC GS]]전에서는 0-2로 무너지며 인천 부임후 첫 패배를 당했다. | 2010년 9월 4일 부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서 첫 경기를 치루었으며, [[부산 아이파크]]와의 데뷔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였으며 두번째 경기인 [[광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마저 후반 45분에 동점골을 먹히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다. 다만 3번째 경기인 [[대구 FC]]와의 22라운드 경기에서 4-1로 완승하며 인천에서의 첫 승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23라운드 [[FC GS]]전에서는 0-2로 무너지며 인천 부임후 첫 패배를 당했다. | ||
2011시즌은 6승 14무 10패로 13위를 기록하였다. 2012 시즌에는 리그 8위에 들어가지 못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공언하였다. | 2011시즌은 6승 14무 10패로 13위를 기록하였다. 2012 시즌에는 리그 8위에 들어가지 못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공언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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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전라남도]]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 * [[2005년]], [[전라남도]]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 ||
== 경력 == | == 경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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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 같이 보기 == | ||
* [[허정무컵]] | |||
* [[무재배]] | |||
== 참고 == | == 참고 == | ||
<references/> | <references/> | ||
== 외부 링크 == | == 외부 링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