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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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염기훈

염기훈 (廉基勳, 1983년 3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2006년부터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이드 미드필더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염기훈
  • 출생일 : 1983년 3월 30일
  • 신체 : 182cm / 78kg
  • 국가대표 경력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7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8년 EAFF 동아시안컵 국가대표
2010년 제19회 FIFA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국가대표
2011년 제15회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12년 제20회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대표
2013년 EAFF 동아시안컵 국가대표
2015년 제21회 FIFA 러시아 월드컵 예선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A매치 통산 51경기 출전 4득점)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 6경기 출전 1득점)
  • 특이 기록
K리그 통산 첫 100도움 기록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6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31 7 7 5 1 0
2007 18 3 5 3 1 0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 3 0 1 0 0 0
2008 울산 현대 울산 현대 19 11 5 1 0 0
2009 20 10 3 3 0 0
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 4 1 10 0 0
2011 29 11 9 14 0 0
2013 경찰 축구단 경찰 축구단 챌린지 21 2 7 11 1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클래식 9 1 1 1 0 0
2014 35 5 4 8 1 0
2015 35 4 8 17 1 0
2016 34 10 4 15 1 0
2017 38 18 6 11 1 0
2018 K리그1 34 18 6 4 1 0
2019 0 0 0 0 0 0
통산 K리그1 324 102 60 92 7 0
K리그2 21 2 7 11 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9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시절[편집]

전라남도 해남군 출생으로 강경상업고등학교, 호남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유명하지 않은 고등학교를 나온 탓에 주목을 받기 힘든편이었으나, 대학시절에 점점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프로 생활[편집]

전북 현대 시절[편집]

전북 시절의 염기훈

대학시절 두각을 나타낸 염기훈은 2006년 K리그 드래프트가 부활하면서 호남지방 연고구단인 전북 현대 모터스의 우선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당시 최강희 감독은 왼발 프리키커라는 강점에 게임센스가 뛰어난 염기훈을 주전 미드필더로 낙점했고, 염기훈도 이에 부응하듯 3월 29일 대전 시티즌 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는 등 주전으로써의 입지를 다지며 신인답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하지만 같은해 7월, 동료인 김형범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도중 언덕을 세 바퀴 반이나 도는 교통사고를 당해 구단내외로 발칵 뒤집은바 있다. 염기훈은 머리와 왼팔에 부상을 입었고, 한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얼마안가 부상에서 회복해 활약을 이어갔다.[1] 부상 회복 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후반에만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면서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알카라마와의 ACL 결승 1차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면서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리그에서도 염기훈은 7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국가대표팀에도 뽑히는 영광을 얻었고, 시즌종료 후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2006년을 염기훈의 해로 만들기에 이른다.

2007년에도 염기훈은 주전 미드필더로 낙점받으면서 활약했다. 염기훈은 전반기에만 18경기에 나와 5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2년차 징크스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듯했다. 하지만..


울산 현대 시절[편집]

2007년에도 맹활약을 펼치던 염기훈은 미드필드진 보강에 고심해오던 울산에게 있어서 알맞는 카드였고, 울산은 임유환과 정경호를 주고 염기훈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2]



울산은 염기훈을 활용하여 이천수마차도, 알미르의 공격력을 극대화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염기훈은 입단하자마자 발등뼈 골절로 수술을 받으면서, 후반기를 거의 통으로 쉬었고 성적도 3경기 1골에 그쳤다. 이듬해인 2008시즌 염기훈은 절치부심하면서 시즌을 준비했지만 4월 수원과의 원정경기에 전반 18분만에 엄지 발가락 골절로 교체아웃 되면서 전반기를 마감했다. 후반기 다시 돌아온 염기훈은 플레이오프 전북과의 경기에서 헤딩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제 몫을 하는가 싶었지만, 시즌 종료 후 구단과의 상의 없이 프리미어리그 웨스트 브롬위치 진출을 추진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결국 못갔잖아 2009년에도 부상의 악령은 염기훈을 비껴가지 않았다. 2라운드 전북전을 앞두고 발가락 피로골절로 전반기 아웃. 후반기 복귀했지만 부상 여파로 20경기 3골 3도움에 그쳤다. 그야말로 울산 시절 염기훈은 골칫덩이 그 자체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010년 ~ 2011년)[편집]

2009년 FA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리그에서는 10위에 그쳤던 수원에게 있어서 필요한 선수는 찬스메이커였다. 이에 염기훈은 수원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자원이었고, 염기훈도 수원행을 강력 희망했다. 이에 울산은 수비수 카드를 원했고, 수원은 이재성을 임대후 완전 이적에 현금을 더 얹어주는 조건으로 염기훈의 이적을 성사시켰다.



당시 수원 팬들은 재활중이었던 염기훈을 영입하고, 수비수 유망주였던 이재성을 보낸데에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재활이 끝나고 염기훈은 물 만난 고기처럼 상대진영을 휘젓기 시작하자 팬들의 비판은 환호로 바뀌기에 이른다. 염기훈의 복귀전이었던 AFC 챔피언스 리그 암드포스 전에서 염기훈은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화려한 수원 데뷔전을 치뤘고, 정규리그에서도 활약하며,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도 뽑히는 등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3] 월드컵 이후 윤성효 체제로 바뀌었음에도 염기훈은 팀의 플랜에 있어서 1순위였다. 팀은 비록 6강 플레이오프에 실패했지만, 염기훈은 FA컵 결승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는 등 결정적인 활약으로 팀의 FA컵 2연패를 이끌었다. 2010년 염기훈의 성적은 1골 10 어시스트, 수원이 원하던 패스 마스터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2011년 염기훈은 기존 주장이었던 최성국을 대신하여 주장완장을 찼고 주장에 걸맞는 리더십을 보여주며, 팀을 이끌었다.


경찰청 시절과 복귀[편집]

2012년부터는 경찰청 축구단에 입단하여 군복무를 수행하였으며, 2013년 10월부로 제대하였다. 경찰청이 2013시즌 K리그 챌린지 무대에 참가하면서 염기훈 선수도 1년만에 프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는데, 여전한 실력을 과시하며 K리그 챌린지를 유린하였다. 좀만 더 뛰었다면 K리그 챌린지 출범 1년만에 한시즌 10골 10도움 기록을 수립하였을듯.. 이후 염기훈은 2013년 10월 제대하여 수원 삼성에 복귀, 곧바로 경기를 소화하며 상위 스플릿에서 부진 중인 수원의 공격 부활을 위해 뛰고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013년 ~ )[편집]

2013년 ~ 2014년[편집]

염기훈은 소속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복귀하여 잔여 경기를 소화하였으나, 염기훈은 군입대 전에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팬들의 열렬한 지지는 여전하였다. 2014년, 주장으로 선임된 염기훈은 서정원 감독 지도 아래에서 첫 시즌을 치루었다. 전임 감독이었던 윤성효 시절보다 더 빨라진 템포와 미드필더를 거치는 플레이를 주문한 서 감독의 전술로 염기훈은 초반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염기훈의 킥력과 경기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조급해 보이는 플레이와 정대세로저와의 부조화가 있어보였다. 그러나 서 감독은 염기훈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으며, 폼 회복을 위하여 염기훈을 후보로 내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경기에 투입하였다. 염기훈은 4월 5일에 있었던 경남 FC 원정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성공시켰고, 다음 경기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하는 모습이었다. 상승세를 탄 염기훈은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하나의 도움을 기록하고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는 두개의 도움을 기록하는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기록으로 초반 부진을 털어내고 부활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이후 경기에서는 간간히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기는 하지만 경기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평을 받게되었고, 시즌 초반의 조급한 플레이로 과거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염기훈은 2014년 4골 8도움을 기록했지만 경기력 자체는 답답한 모습이 많았으며 염기훈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즉, '세대교체의 대상자'라는 평으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시즌이 종료한 뒤, 수원 삼성은 모기업의 제정 감축으로 몇 고액 연봉자들의 교통정리에 나섰다. 여기에는 김두현과 염기훈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외의 선수들은 연봉 삭감과 같은 조건을 받아들여 팀에 잔류하였으나 두 선수의 거취는 새해가 지난 2015년 1월에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수원 삼성은 이 시기에 말라가로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염기훈과 김두현은 재계약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염기훈은 동계 전지훈련에 포함되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2015년 1월 30일, 극적으로 염기훈의 1년 재계약이 발표되었고 2015년 한 시즌 더 함께하기로 했었다. 염기훈은, “국내에선 수원외의 팀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팀 수원과 2015시즌에도 함께 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 한다. 팀에 늦게 합류하는 만큼 더 좋은 모습으로 팬 여러분들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4] 라고 소감을 밝힌 뒤, 전지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말라가로 이동하여 팀 훈련에 늦게나마 합류 할 수 있었다.[5]


2015년 ~ 현재[편집]

2015년 초반부터 재계약으로 힘든 시작을 했었던 염기훈은 2014시즌에 이어서 2년 연속 주장에 선임되어 선수단과 서 감독의 신뢰를 받았고, 시즌 첫 경기인 AFC 챔피언스리그 우라와 레즈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후 염기훈은 훈련에서 가장 늦게 합류한 선수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활약을 펼치게 된다. 염기훈은 나오는 경기마다 팀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주며 염기훈이 수원 삼성 입단 후 에이스로 입지를 확실히 다졌던 2011년 보다 더 위협적인 모습이었고, 더 날카로워진 왼발 킥 감각과 더욱 좋아진 피지컬로 시즌 초반부터 리그를 정복하기 시작하였다. 몇 달전만 해도 떨어진 폼으로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재계약 협상에서도 난항을 겪은 선수가 맞는지 의심갈 정도. 염기훈은 특히 정대세와의 호흡이 완벽하여서 정대세의 공격을 돕고 또한 정대세도 염기훈의 수비 견제를 풀어주어 자유롭게 만드는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6] 이렇게 상승세를 탄 염기훈은 거침 없이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였고 리그에서만 7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적립[7]하여 에이스의 완벽한 귀환을 알렸다. 염기훈은 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눈부신 활약으로 한동안 멀어졌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재발탁되었고 상승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이어져 아랍에미리트와의 친선경기에서 왼발 프리킥으로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득점 이후로 오랜만에 득점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대표팀에서 돌아온 염기훈은 여전히 수원 삼성의 최고 에이스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름 휴식기간 이후로 염기훈은 체력 저하로 인하여 경기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완벽한 파트너였던 정대세가 갑작스럽게 이적하여 부진에 빠지게 된다. 이시기에 염기훈이 부진하게 되면서 수원 삼성의 공격력도 전반기보다 약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8] 하지만 이러한 폼 저하에도 리그에서 염기훈은 전반기 만큼 매경기 마다 장악하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내 최고 실력자로 역할은 충분히 다하였고, 9월 10일에는 3년 4개월의 장기 재계약에 성공하여 이러한 맹활약에 대한 보답받게 되었다.[9] 염기훈은 이후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고, 경기력이 다시 돌아오는 모습으로 상대 수비 두명을 끌고 다니면서 공격 활로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몇 경기에서는 후반 원톱으로 올라가서 플레이하기도 하는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는 광주 FC와의 경기에서는 도움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모습으로 계속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이후 스플릿 라운드에서는 팀 전체가 부진하여 초반에는 돋보이지 않았지만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여 팀의 준우승에 공헌하였다.[10] 염기훈은 리그에서 8골 17도움이라는 스텟으로 염기훈 자신의 개인 도움 신기록을 달성함과 동시에 2015시즌 도움왕에 오르게 되었고, K리그 통산 최다도움[11]을 기록하는 화려한 활약으로 2015 K리그 클래식 시즌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분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염기훈은 2015년 한해 동안 모든 대회에서 총 45경기에 출전하여 13득점 21도움을 기록하였다. 이듬해 2016년에는 수원이 성적이 곤두박질 치고 부진한 공격수들로 인하여 험난한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시즌 총 15도움을 올리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으나, 수원 더비에서 4-5로 패배하고 성난 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마음 고생도 심했던 시즌. 이후 FA컵 결승 1차전에서 역전골을 넣는 등 맹활약으로 수원을 6년 만에 FA컵 우승으로 이끌어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날카로운 왼발 킥력과 수준급의 키핑력을 지녔다. 피지컬도 준수하여 사이드에서 공을 소유할 때, 상대 수비수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볼을 소유하는 데 능하다. 반면 이러한 스타일로 간혹 볼을 끌며 템포를 죽인다는 평가도 받기도 한다.


해외 이적 논란[편집]

울산 시절인 2009년 1월, 임의로 EPL 진출을 시도하다 구단으로부터 2천만원의 벌금을 문적이 있다. 그 일에 대해 훗날 인터뷰에서 염기훈은


어휴. 그 얘기만 하면 얼굴이 화끈거려서 고개를 못 들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시즌이 끝난 후 에이전트가 공문 한 장을 들고 왔어요. 당시 EPL에 속해 있던 WBA(웨스트브롬위치알비온)에서 절 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공문이었죠. 에이전트가 구단(울산)과는 얘기가 됐으니 어서 잉글랜드로 날아가 테스트를 받아보자고 하더군요. 정말 뛸 듯 기뻤죠. 잉글랜드는 제가 항상 동경하던 곳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기쁜 나머지 감독님과 구단에 사실 확인을 못하고 출국한 게 문제였습니다. 그냥 에이전트의 말만 믿었던 것인데, 구단에서는 전혀 보고 받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제가 WBA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울산에서 곧바로 항의 공문을 보냈고, WBA는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은 저를 돌려보냈어요. 감독님께 전화 한 통화만 했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경솔했던 제 잘못입니다.[12]


라고 언급했다. 당시 염기훈은 팬들의 거센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2007년 전북을 떠날 때의 석연치 않았던 과정에다 무단 잉글랜드 행까지 밝혀지면서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선수’로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다. 훗날 그 사건들이 오직 염기훈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이 낳은 것은 아님이 밝혀졌으나, 당시 염기훈은 심적으로 큰 고생을 해야만 했다.


에피소드[편집]

  • 염기훈은 원래 왼발잡이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맨발로 자전거를 타다가 당한 사고로 오른발 수술을 받았고, 불편하던 오른발 대신 왼발을 쓰게 되면서 왼발잡이가 되었다. 염기훈의 골중에 오른발로 넣은 골이 제법 많은 편이다. 발가락으로 체중을 지탱하다보니 발가락 쪽에 부상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 전북 시절 염기훈의 별명은 '땜통', 염구였다. 교통사고로 머리에 부상을 입어 꿰메는 바람에 짧은 머리에 꿰멘 구멍이 있어 불린 별명이였다. 본인은 이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의 별명은 왼발의 마법사[13] 라고 불리고 있다.
  • 리그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지만, 유독 A매치에서는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혹자는 리그를 위해 A매치에서 몸을 만드는 선수라고도 말한다.
  • 2015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 치우는 "기록의 사나이"이기도 하다. 2016년에는 4득점 15도움을 기록하며 수원 통산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인 데니스의 88포인트를 92포인트로 경신하였으며, K리그만 합산한 수원 통산 최다 도움 기록도 65개로 연장하였다. 굵직한 대회들에서도 기록의 향연은 이어지는데, 대표적으로 국내 선수 최초로 도움왕 2연패를 달성하고,[14] K리그 통산 도움 순위도 88도움으로 1위 자리에 올랐다. 놀라운 것은 K리그 챌린지 시절 11도움을 제외해 77도움으로 기록해도 2위 몰리나의 69도움을 훨씬 넘어선 기록이라는 점. 게다가 2016년 수원 소속으로 FA컵을 우승해 FA컵 MVP를 최초로 두 번 수상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상[편집]

개인[편집]


클럽[편집]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국가 대표팀[편집]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6.01 ~ 2007.12 전북 현대 모터스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2007.01 ~ 2009.12 울산 현대 울산 현대 K리그
2010.01 ~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1
→ 2012 ~ 2013 경찰 축구단 경찰 축구단 R리그K리그 챌린지 군복무


참고[편집]

  1. 당시 차를 같이 타고가던 김형범은 이 여파가 계속되어서인지 계속된 부상을 당하고 있다. 사실 이 교통사고 당시 운전자였던 김형범은 무면허에 과속상태에서 사고를 낸 것이었다. 자세한건 김형범 문서 참조.
  2. 염기훈은 당초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의 이적을 지속적으로 요청하여 협상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전북은 괘씸죄로 수원과의 협상이 벌어지기 전 울산으로 먼저 트레이드를 시켰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염기훈은 수원행을 이때부터 강력 희망했다고.
  3. 하지만, 조별예선 2차전 아르헨티나 전에서 후반 12분 천금의 왼발 슈팅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동점에 실패했고, 팀은 4대1로 대패, 온 국민에게 온갖 욕을 다 먹고 말았다. 이때 얻은 오명이 바로 '염의족'..
  4. [1]
  5. 재계약 과정에서 염기훈을 선택한 수원 삼성은 김두현과 협상을 포기하였고, 이후 김두현김학범 감독의 성남 FC로 이적하였다.
  6. 그 둘의 플레이의 정점은 4월 18일에 있었던 북벌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염기훈은 1골 2어시를 기록하고, 정대세는 2골 2어시를 기록하여 총 5-1의 통쾌한 대승을 이끌었다.
  7. AFC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하면 10경기 연속.
  8. 염기훈의 일시적 부진에는 위의 이유들 이외에도 수원 삼성 선수진들이 지나치게 염기훈에게 의존하는 모습도 크다 할 수 있다. 염기훈의 전반기 맹활약으로 상대팀들의 집중 수비견제 작전을 펼칠 때, 다른 선수들이 염기훈의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어야 됐었지만 그렇게 견제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염기훈에게만 공격을 의존할려 했기 때문이다. 염기훈에 대한 선수단들의 신뢰도라고 할 수 있지만 부담을 덜어줄 필요도 있다.
  9. 이 과정에서 여름에 염기훈은 중동의 한팀에게서 거액의 이적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액수가 상당하여 선수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염기훈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으로 거의 이적의 기정사실화 되었으나, 염기훈은 잔류를 선택하여 수원 팬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게 되었다.정대세와 차별화
  10. 스플릿 라운드 최종전인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프리킥 선제골로 수원 삼성 입단 후 통산 100번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였다.
  11. 그러나 경찰청 축구단 시절 기록인 11어시를 제외해야 된다는 의견도 많다.
  12. http://www.besteleven.co.kr/?sec=b11&pid=detail&iBoard=32&iIDX=38756
  13. 염기훈을 까는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전에서의 행동을 보고 '왼발의 맙소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14. K리그 최초이자 1호 2연패는 몰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