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빛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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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빛가람 (1990년 5월 7일 - 현재)은 2010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드필더다.


프로필

성남과 계약 당시 포즈를 취한 윤빛가람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경남 FC 2010 29 5 9 7 1 0
경남 FC 2011 32 9 8 7 10 0
통산 (K리그) - 61 14 17 14 11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1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윤빛가람은 창원시 의창구 출생으로, 의창구에 있는 창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토월중학교에 진학하였다. 하지만 토월중학교 코치의 지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윤빛가람의 아버지는 윤빛가람을 김해시에 위치한 김해중학교로 전학시켰다. 그 뒤 윤빛가람은 부경고등학교에 입학, 대한민국 U-17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이 때 부터 FM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U-17 월드컵이 열릴 당시, 윤빛가람은 K리그는 느려서 안 본다. 수원 삼성FC GS의 경기가 그나마 낫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축구팬들에게 폭풍 까임을 당했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그는 U-17 월드컵에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였고, 팬들에게 거품뿐인 선수, 입으로 축구하는 선수라는 혹평을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2009시즌을 앞두고 중앙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입학하자마자 발목을 심하게 다쳐 4개월 가까이 쉬었던 그는 대학때는 그렇게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K리그 생활

2010년이 되면서, 대학 2학년이 된 윤빛가람은 프로 입단을 타진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비하발언과 함께 부상 후 좋지 못한 경기력 때문에 그를 지명하려는 클럽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경남 FC 감독이던 조광래는 미드필더진의 강화를 위해 과감히 윤빛가람을 지명했다. 고향 팀에 입단하며 K리그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K리그 깎아내리더니 결국 뛰는건 K리그냐는 식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그는 그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이용래, 김태욱과 함께 경남 역사상 최고의 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라인을 형성했다. 그는 2010시즌 29경기에 나서 9골 7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신인왕 상을 당당하게 거머쥔다. 조광래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떠나고, 김귀화 대행 체제를 거쳐 최진한 감독 체제로 돌아선 뒤에도 그는 경남 미드필더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이적 논란

2011시즌에도 경남의 핵심으로 좋은 활약을 펼친 그는, 시즌 종료 후 리그에 태풍을 몰고 왔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U-23 대표팀에 차출되어 외국에 나가 있는 상태였고, 그도 알지 못한 채 성남 일화 천마와의 이적 협상이 진행되었던 것. 그 후 K리그와 경남은 윤빛가람의 이적을 빠르게 발표하면서 리그 팬뿐만 아니라 해외축구 팬들에게도 맹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해 이영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 순간만큼은 K리그가 부끄럽습니다라고 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였고, 이에 대한 논란이 너무 극심해 이적이 취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경남 입장에선 1년 임대 후 이적을 제시한 레인저스 FC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적료도 성남으로 보내는 것에 비해 상당히 적은 액수여서 레인저스의 제의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성남은 원래 윤빛가람에게 현금만 주려고 했으나, 경남 측에서 조재철을 함께 주지 않으면 트레이드를 하지 않겠다면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고심하던 성남은 결국 현금 20억 원에 조재철 이적을 포함한 초대형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그 뒤 조용히 지내던 윤빛가람은 2012년 1월, 성남과 계약을 마무리짓고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뛰기로 합의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짧은 드리블로 상대를 제친 후 좌우로 낮게 뿌려주는 패스를 즐긴다. 나이 답지 않은 시야가 넓은 선수.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떠난 이후 마음 속 구심점을 잃었는지 2011시즌엔 경고가 무려 10배나 증가하였다. 윤일록과 함께 최진한 감독이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기고만장해 있다는 팬들의 의견도 있다. 2010시즌과 비교하자면 공격 포인트는 하나 줄었고, 팀 플레이 측면에서도 딱히 나아진 측면이 없는 듯. 단, 루시오와의 콤비 플레이는 일품이었다.

수상 및 업적

클럽 및 국가대표팀

클럽

국가대표팀

개인상

에피소드

  • 프로 입단 당시 중앙대는 윤빛가람을 보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는 기어이 프로 행을 감행, 그 뒤 대학교 재학생은 드래프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소위 윤빛가람 룰.
  • 2011시즌 종료 후, 롯데월드에서 재즈 피아노 연주자 진보라씨와 다정히 다니는 것이 목격되어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스캔들이 터지기도 하였다.
  • 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2012시즌을 앞두고,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축구 특기생 자격으로 수시모집에 합격하기도 하였다.

별명

귀엽고, 뽀로로를 닮았다고 하여딱히 닮지도 귀엽지도 않은 것 같지만 소녀팬들이 윤뽀로로라는 별명을 지어주었고, 국가대표팀 경기에 처음 나섰을 때, 유니폼 등에 새겨진 영문 철자가 BITGARAM이어서 생긴 윤비트라는 별명도 있다.

같이 보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