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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4일 (수) 19:43 판

수원 시절 조용태

조용태(1986년 3월 31일 ~ 현재)는 대한민국 국적 공격형 미드필더로, 2008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프로필

  • 이름 : 조용태
  • 출생일 : 1986년 3월 31일
  • 신체 조건 : 180cm / 69kg
  • 국가대표 경력 : 2007년 청소년대표
  • 현 소속팀 : 무소속
  • 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08 17 17 2 3 0 0
2009 9 9 1 0 0 0
광주 상무 2010 15 11 3 1 0 0
상주 상무 2011 12 12 1 0 0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 2 2 0 0 0 0
2012 12 12 1 1 0 0
클래식 2013 14 12 1 1 0 0
경남 FC 2014 0 0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 81 75 9 6 0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유소년 시절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으며, 순천중앙초등학교 시절이던 1998년, 제 11회 차범근 축구대상을 받았던바 있다. [1] 이후 매산중학교를 거쳐 전남의 축구 명문 광양제철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여기서 조용태는 험멜코리아 제9회 무학기 전국축구대회의 우승을 이끌며 MVP에 선정,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전남 구단이 입단 제의를 안하는 바람에 자존심이 상한 조용태는 연세대학교로 그냥 가버린다.


수원 시절

연세대에서 3학년을 보내던 조용태는 2007년 겨울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고, 2라운드 6순위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수원에는 이관우, 백지훈 등 좋은 미드필더 자원들이 많았기에 조용태 선수는 주로 후반 조커로 출전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조커로 투입될 때마다 족족 골을 집어넣으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조용태가 교체되어 넣은 골은 2008 K리그 컵대회 FC GS와의 경기, 그리고 K리그 정규리그 전북 현대와 원정 경기였는데, 특히 전북전 골은 후반 48분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기 직전에 넣은 것이어서 그 의미가 매우 컸다. 이러한 쏠쏠한 활약을 바탕으로 조용태는 소속팀의 2008 K리그 우승에 일조했지만, 2009년 부상 때문에 별로 좋은 활약을 못보여주고 2010년 광주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 시절

상무 시절 조용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선수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광주 상무에는 최성국이 붙박이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 여기에 상무의 중원도 빵빵했던 터라 조용태는 간간히 교체로 경기를 나서며 12경기를 소화하는데 그쳤다. 이후 2011년 최성국이 제대해서 조용태는 주전의 기회를 얻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김정우가 공격수 변신을 선언하는 바람에 조용태는 또 자리를 못얻었다. 다행히도 김정우가 국대 차출의 후유증으로 후반기 부진하면서[2] 조선수도 조금이나마 선발 기회를 얻으며 활동하였다. 이후 2011년 9월 21일 전역신고를 하며 원 소속팀 수원으로 복귀하였다.


다시 수원

윤성효 감독 체제로 바뀐 수원에서도 조용태에게 부여된 롤은 비슷했다. 바로 조커! 수원으로 복귀한 이후 꾸준히 조커로 출장을 해 나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2011년 10월 8일 전북 현대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31분 교체 투입되었지만 역습 상황에서 슈팅을 실패하였고, 곧바로 이어진 전북의 역습으로 동점골을 실점하기에 이르자 윤성효감독은 조용태를 크게 질책한 뒤 후반 44분 조용태를 도로 빼고 하태균을 투입하였다. 이 경기 이후로 조선수는 출장기록을 이어가지 못한채 11시즌을 마무리짓고 말았다. 이후 2012시즌 계속해서 대기 명단에 오르면서 조커로써의 임무를 부여받은 조용태는 2012년 4월 14일 대구 FC와의 홈경기에서 0-0으로 팽팽히 맞선 후반 44분 과감한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었고, 이를 스테보 침착하게 마무리 지으며, 팀의 1-0 승리에 공헌하였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후 서정원 감독 체제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던 조선수는 2014시즌을 앞두고 경남 FC로 1년 임대 이적하였으나 제대로 된 활약은 하지 못 하고 방출되었다.


플레이 스타일

에피소드

  • 2008년 당시 후반 들어서 결승골을 자주 넣자 수원의 서포터는 후반 40분~ 48분 사이를 '용태 타임'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데뷔 시즌의 좋은 활약으로 2008 K리그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지만, 현실 신인왕은 당시에 컵대회 포함해서 5골 넣은 FC GS이승렬.
  • 2011년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을 준비하던 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은 상주 상무의 김정우, 최효진을 국가대표팀에 불렀는데, 이후 대표팀과 대구 FC간 평가전을 위해 김치우와 더불어서 조용태까지 뽑아갔다.[3]당시 이수철 상주 감독은 4명이나 국가대표로 차출된 것을 두고, "이래 가지고 어떻게 리그하냐" “대표팀도 사정이 있겠지만 우리 사정도 급하다.”라고 조광래를 열심히 디스했지만, 돌아온건 김정우 부상뿐이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1. 당시에 대상은 조용태였고, 장려상은 성남 일화, 수원 삼성에서 활약 중인 조동건이 차지하였던바 있다.
  2. 여기다 공전불후의 K리그 승부조작 후폭풍으로 상주 상무의 분위기가 초상집 상황인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3. 조용태의 첫 번째 국가대표 발탁이었지만 대구 FC와의 경기는 연습경기이므로 비공식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