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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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ubi (토론 | 기여)님의 2012년 1월 14일 (토) 04:12 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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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근철.jpg
청대 시절의 김근철

김근철(1983년 6월 24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5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중인 미드필더이다.


프로필

  • 이름 : 김근철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대구 FC 2005 7 7 0 1 0 0
경남 FC 2006 25 14 3 3 3 0
경남 FC 2007 27 8 1 2 5 0
경남 FC 2008 17 4 1 0 3 0
경남 FC 2009 5 5 0 0 0 0
부산 아이파크 2010 30 15 2 5 8 0
부산 아이파크 2011 6 6 0 0 2 0
전남 드래곤즈 2012 0 0 0 0 0 0
통산 (K리그) - 117 59 7 11 21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

1999년 풍생고등학교에 입학 당시부터 초고교급 유망주로 통했다. 1학년 때 전국고교추계연맹전에서 득점왕, 무학기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을 수상하며 고교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더니, 2000년부터는 고교전국선수권, 고교왕중왕전 등 각종 대회 MVP를 독식했으며, 2001년에도 3개 대회 MVP를 석권하는 등, 또래들보다 한 차원 높은 축구를 구사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J리그 진출

2001년 5월, J리그 주빌로 이와타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당시 한국 고교생이 J리그로 직행한 것은 전례가 없던일이었기에 계약금도 같은 해 K리그 최대 계약금을 받았던 윤화평의 2억 5천만원을 가뿐히 넘길꺼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기대를 모으며 주빌로에 입단한 김근철 선수는 2002 시즌 개막전부터 주빌로 1군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으나, 주빌로는 당시 마에다 료이치료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데 혈안이 되있었기에 김근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결국 데뷔 시즌 김근철은 1경기 교체출장에 그쳤다.

실망스러운 데뷔 시즌 이듬해인, 2003 시즌부터는 당시 J2리그였던 쇼난 벨마레로 1년 기한부 임대 되어, 그 팀에서 핵심 주전으로 자리 잡으며 전담 프리킥커이자 팀 내 플레이메이커를 맡아 넓은 시야와 패서로서의 자질을 가감없이 뽐내며 대활약하였다. 2003 시즌 종료후 김근철 선수 본인은 주빌로로의 복귀를 희망했으나, 오히려 주빌로는 쇼난 벨마레로의 완전이적을 확정지으면서 김근철 선수를 외면했다. 김근철 선수는 쇼난 벨마레와의 계약 협상에서 '2004시즌 벨마레가 J리그로 승격이 불발된다면 팀을 떠나겠다' 는 조건하에 1년 계약에 서명했고, 2004시즌 종료후, 승격에 실패한 쇼난 벨마레를 김근철 선수는 미련없이 떠나 K리그로의 복귀를 모색했다. 2년동안 벨마레에서 김근철 선수가 남긴 기록은 78경기 출장 4골 9도움이었다.


K리그

대구 입단 과정

벨마레를 나올 당시, 김근철 선수는 성남 일화 천마 행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왔고 실제로 성남에서 입단테스트를 치뤘다. 그러나 예상외로 김근철 선수는 성남으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고, 이에 발맞춰 성남 외 다른 K리그 축구팀들도 김근철 영입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유인즉슨 J2 리그의 프레싱에서는 창조적인 패스를 발휘할 공간이 많았지만, K리그에서는 공간 자체가 틀어막히는 경우가 많아, 찔러줄 공간이 없을때 김근철 선수는 백패스로 일관하는 실망스런 플레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여기에 체력적으로도 후반 20분이 지나면서부터 급격히 움직임이 둔해지고 순간적인 돌파나 스피드면에서 평균 이하인 점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고 한다.

똑같은 이유로 벨마레에서 활약하던 2003년에도 한국 청소년대표에 잠깐 차출되었으나, 곧바로 탈락한 경험이 있었다. 여기에 몸값도 지나치게 높았다. 이렇게 외면당하던 김근철 선수를 유일하게 대구 FC박종환 감독만이 영입을 타진했고, 결국 대구 FC가 계약기간 1년으로 김근철 선수를 영입했다.


대구 시절

우여곡절 끝에 대구에 입단한 김선수를 몇번 기용해본 박종환 감독의 김근철 선수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인용하자면,


근철이 같은 경우는 볼을 잘 차. 그런데 본인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순발력과 수비력이 부족해. 또 볼을 논스톱으로 처리할 때 해야하고, 1:1 할 때 해야하고, 2:1 패스를 통해 돌파할 때 해야하는 것이 축구인데, 그게 적응이 안 됐어. 혼자 축구를 하려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 팀에 적응이 안 됐지. 그거 고치려면 힘들어. 본인도 힘들어 하고 있고.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축구, 아니 한국축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빨리 고쳐야 해. 감각은 분명히 있는 애거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미드필더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근철이한테 강조하고 있는데, 본인도 노력하고 있어.


요컨대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했고 스스로 공간을 뚫어내기엔 몸싸움이나 스피드가 부족했던, 현대 축구의 흐름과 상반되는 능력의 불균형이 김근철 선수의 최대의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박종환 감독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김근철 선수에게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포지션 전환은 한두달의 훈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김근철 선수의 경우는 웨이트레이닝도 겸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와같은 스타일 변화를 위해서 1년 밖에 안되는 대구와의 계약기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재계약하기엔, 대구에서의 미미한 활약도에 비해 몸값이 너무 높았던 선수였에 결국 대구는 2005시즌 종료와 함께 김근철 선수를 방출한다.


경남 시절

대구를 떠난 김근철 선수는, 2006년 K리그 신생팀이었던 경남 FC에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 박항서 당시 경남 감독 역시 김근철 선수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나, 박종환 감독과는 달리 스피드보다는 기술을 향상할 것을 주문했다. 드리블과 개인기 훈련이 김근철 성향에 맞았는지, 박항서의 조련 아래 김근철 선수의 기량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기량 향상은 그대로 출장기록 증가와 개인 기록 향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200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경남의 핵심 중앙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특히 김효일 선수와의 중원 장악 능력은 K리그에서 최고급으로 평가받았으며 중앙에서의 조직력 극대화는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져, 경남 FC6강 플레이오프행 등을 이끄는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김근철 선수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이처럼 경남에서 3년동안 꾸준한 활약을 펼쳐온 김근철 선수에게 2009시즌은 악몽과 같았다. 시작전 까지만 해도 김근철 선수는 당연히 경남 베스트 11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김근철 선수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져갔던 것. 특히 김근철 선수가 이탈한 중앙 미드필더의 빈자리를 이용래, 안상현 선수가 훌륭하게 메워주면서 김근철 선수의 가치는 격감하고 말았다.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린 김근철 선수는 자유계약 대상자로 팀을 떠나고 말았다.

부산 시절

부산 아이파크는 김근철 선수가 자유계약으로 풀렸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한뒤 곧바로 영입을 타진, 부산에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부산 입단 후 유호준 선수와 함께 투 볼란테를 형성하며 부산 미드필더 진을 리빌딩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체력고갈로 시즌 소화에 애를 먹었으며 김근철 선수의 이탈과 함께 부산의 성적도 급전직하하고 말았다. 2011년 안익수 감독 부임 이후에는 유호준, 박희도 등과 함께 2군행 지시를 받아 충격을 주었다. 유호준 선수가 다시 폼을 올리고, 희도 선수는 간간히 출장하면서 2011시즌 후 군입대를 준비하는 와중에 김근철 선수는 부상으로 통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여기에 2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듯. 이후 2011년 11월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타전되었다. 김형필 선수와 트레이드 되었다는듯.


플레이 스타일

주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괜찮은 활동량, 넓은 시야와 뛰어난 감각으로 경남의 중원을 이끌었던 선수다. 김효일이 경남 합류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은 이후에는 좀 더 수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종종 스토퍼와 동일선상에서 수비를 이끌면서 안정적인 볼 배급으로 경남에 기여하였다. 요컨대 공수양면에서 활약하였던셈. 박항서 시대가 끝난 이후에는 더 기술을 중시하는(?) 조광래 감독 휘하에서 김태욱의 든든한 지원 아래 이용래와 함께 최고의 삼각 편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에피소드

  •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볼을 걷어내려던 것이 당시 주심이던 이상용의 안면을 강타해 경남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이 장면은 당시 '근백이헤드샷.gif'라는 이름으로 경남 팬들의 미니홈피를 장식했다. 이 해프닝이 있은 뒤로 몇몇 경남 팬들은 이상용이 주심으로 배정되어 삽질을 하면 '상용아! 근철이 불러올까?' 라며 그들만의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기도.


경력


같이 보기

참고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