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록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포항 시절 김상록

김상록 (1979년 2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2001년부터 2013년까지 K리그내셔널리그에서 활동하였던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김상록
  • 출생일 : 1979년 2월 25일생
  • 신체 : 172cm / 65kg
  • 국가대표 경력
1998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 상비군
2001년 동아시아 국가대표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내셔널리그 포함)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2001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K리그 34 16 4 1 1 0
2002 Teamlogo psfc.png 포항 스틸러스 15 12 1 2 0 0
2003 28 20 2 2 2 0
2004 Teamlogo gsangmu.png 광주 상무 불사조 31 10 1 1 3 0
2005 30 14 5 5 0 0
2006 Teamlogo sk.png SK 유나이티드 32 8 6 3 0 0
2007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37 16 10 6 2 0
2008 27 25 1 2 0 0
2009 15 14 1 0 0 0
2010 Teamlogo bifc.png 부산 아이파크 13 12 0 0 0 0
2011 Teamlogo mipo.png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KNL 10 10 0 1 1 0
2012 4 4 0 0 0 0
2013 Teamlogo bfc2018.png 부천 FC 1995 챌린지 19 19 1 1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262 147 31 22 8 0
K리그 챌린지 19 19 1 1 0 0
내셔널리그 14 14 0 1 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16 Teamlogo sangju.png 상주 상무 코치
2017 ~ 현재 Teamlogo bifc.png 부산 아이파크


설명[편집]

K리그에서 10년동안 활동하였던 선수로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소화할 수 있었다.


학생 시절[편집]

김상록 선수는 왜소한 체격 (173cm, 67kg) 임에도 불구하고, 드리블과 탁월한 골 결정력으로 대학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바있다. 특히 볼을 논스톱으로 받아서 슈팅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해, 왼발의 킬러로 통했다. 대부분의 득점이 왼발에서 나왔기때문. 당시 김상록과 함께 고려대 공격을 주도했던 선수가 고민기 선수인데, 두 선수 모두 고려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나란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에 발탁되기도 했었다. 특히 2000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결승전에서 김상록 선수는 40m 드리블에 이은 강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려 동 대회 우승과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프로 데뷔[편집]

2001년 드래프트 (당시 드래프트는 2001년을 끝으로 폐지가 예정돼있었다.)에서 김상록 선수는 포항 스틸러스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포항은 2000시즌 10개 팀 중 9위를 기록해, 드래프트 우선 지명권을 얻었고 최순호 감독은 모든 팀이 1순위로 탐내고있던 김상록을 선택했던 것이다. 포항의 기대에 부응하듯 김상록 선수는 데뷔 시즌 매우 인상깊은 활약을 남겼다. 데뷔 후 6경기째만에 對 전북 현대와의 경기에서 50m 단독 드리블에 이은 칩샷으로 2:1 결승골을 터뜨리며 깜짝 데뷔골을 신고하더니, 더욱 현란한 개인기와 한 박자 빠른 슈팅으로 최순호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내, 당시 포항의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자심을 밀어내기에 이르렀다.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 선발까지 되면서 김상록 선수는 신인왕도 눈독을 들일 정도로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치루는듯 보였다. 그러나 8월이 지나면서 김상록의 페이스가 떨어지고 소속팀인 포항의 기세도 한풀 꺽이면서 (8경기 연속 무승 기록) 김상록은 서브로 밀려나버렸다. 그러나 신인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고 최순호 감독을 비롯해 포항 관계자들도 김상록 선수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않았다.


계륵[편집]

김선수는 2번째 시즌을 맞이한 2002년에도 아디다스 컵대회에 꾸준히 선발 출장하며 최순호 감독의 기대를 받았으나, 이동국의 부상과 고정운 선수의 은퇴, 나희근, 윤보영의 부진 등 포항 공격진이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김상록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특히나 김상록에게 공간을 만들어줄 타겟 스트라이커가 마뜩치 않으면서 김선수의 활동폭은 눈에띄게 감소했고 결국 2002시즌 리그 6경기 1골 1도움에 그치며 최순호의 전력 구상에서 밀려나고만다. 2003시즌부터는 난데없이 윙어로 돌변해 장기였던 골결정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게 되버리며 무미 건조한 크로스만 남발하기에 이르렀다. 불과 2년만에 포항에서는 설자리가 마뜩찮은 계륵이 되버리고만 것. 결국 2004시즌을 앞두고 광주 상무 입대를 결정하고 만다.


인천에 오기까지[편집]

상무에 입단하고서 한 때는 팀 사정상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뛰기도 하였으나, 2005시즌부터 제 위치인 공격형 미드필더와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오가며 안정감을 되찾은 김상록 선수는 전기리그에만 3골 3도움을 올리며 정윤성 선수에 이어 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어느 정도 슬럼프를 극복하며 자신감을 되찾은 김상록 선수는 전역과 동시에 고기구와 트레이드되어 2006시즌부터 SK에서 뛰게되었다. 사전 설명 하나 없이 SK로 트레이드된 김상록 선수는 심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때문에 팀 프론트와 시즌 내내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이런 외부조건의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김상록은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SK의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2006 시즌 종료와 함께 수도권 팀으로의 이적을 요구한 김상록 선수는, 마침 미드필더를 찾고 있던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포착. 이요한 선수와의 트레이드를 조건으로 1시즌만에 SK에서 인천으로 이적했다.


인천에서의 포텐 폭발[편집]

인천에서 맞이한 첫시즌이었던 2007년은 김상록 선수에게 있어 최고의 한 해였다. 박이천 감독대행은 매우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구사했는데, 김상록 방승환, 데얀으로 3톱을 구성하고 위 3명을 제외한 윙어와 중앙미들은 이들에게 볼배급을 집중토록 하는 진용을 갖추었다. 이 전술의 승패는 데얀의 득점력과 방승환의 멀티플레이어 자질 그리고 김상록의 개인기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이 전술적 승부수는 대성공을 거두어, 인천 득점력은 06시즌 대비 50% 가량 증가했다. (대신 수비의 약화는 피할 수 없었지만)

특히 김상록 선수의 대약진은 단연 돋보였는데 2007시즌 10골을 몰아넣으며 국내 선수 중 이근호 선수와 함께 공동 1위에 랭크되었고 도움 부문에서도 6도움을 올리며 인천 득점의 30% 가량을 김상록 선수가 전담했다. 즉, 인천의 득점 53골 중 16개가 김상록 선수의 발끝에서 나온 것이다. 공격포인트 총합은 16 포인트로 같은 해 우성용 선수의 18포인트에 이어 국내 선수 2위에 랭크되는 등, 2007시즌 K리그의 숨은 MVP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대활약을 펼쳤다. 포항 시절부터 기대했던 포텐이 드디어 터졌다고 많은이들의 주목을 받았던것은 당연했다.


인천에서 부산으로[편집]

그러나.. 2008시즌 박이천 감독대행을 뒤이어 바통을 잡은 인천의 장외룡 감독은 김상록의 역할을 활용하는데 실패했다. 더군다나, 단짝 플레이어였던 데얀의 이적과 라돈치치의 부진등은, 김상록의 활동폭을 더욱 좁게 만들었고, 이는 김상록 선수 개인의 부진뿐만 아니라 인천 공격진의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를 낳았다. 결국 장외룡 감독은 김상록을 2군으로 내려보냈고, 그 해 인천은 극단적인 수비축구와 저조한 득점으로 관중수 격감을 겪었다. 2008시즌 종료와 함께 장외룡 감독이 J리그 오미야 감독으로 떠나고, 인천에 새로 부임한 페트코비치 감독은 여전히 김상록을 전력외로 분류했다. 1년여간의 공백기 동안 체력이 눈에 띄게 저하됐을뿐만 아니라, 페트코 감독의 전술 성향 자체도 장외룡 감독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 그렇게 2년의 시간을 인천 2군에서 보낸 후, 자유계약 대상자로 풀린 김상록 선수는,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했다.


부산 시절과 부천에서 현역 은퇴[편집]

본래 정성훈 선수나 양동현 선수와의 협력 플레이를 상정하고 데려온 선수였으나, 황선홍 감독의 눈에는 차지 않았는지, 개막전 이후로 계속 후보멤버에는 이름을 올리다 10경기 남짓 출장한 후 방출되었다. 아무래도 2년여간의 2군 생활의 공백을 메울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모양. 사실 나이대가 전성기가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2010시즌을 마지막으로 K리그를 떠난 김상록은 2011시즌 내셔널리그미포조선으로 이적하면서 내셔널리그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미포에서는 그다지 많은 출장을 기록하지 못하며 사실상 은퇴 수순에 들어가고 있는듯 하였으나 2013년 출범한 2부리그에 참가하게 된 부천 FC 1995에 입단하면서 K리그에 복귀하게 되었다. 부천에서는 주전 전력보다 주로 조커로 활동하였으며, 19경기에 출전해 1득점과 1도움을 올려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체력적인 문제와 선수로 은퇴시기가 다가왔었던 만큼 시즌 종료와 함께 프로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지도자 생활[편집]

프로 은퇴 후, 약 3년여 동안 근황이 불분명했으나, 2016년부터 조진호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첫 코치커리어는 상주 상무에서 였으며, 조 감독이 부산 아이파크의 사령탑에 부임하자 김상록 씨도 부산 코치로 부임하였다.


에피소드[편집]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2001 ~ 2005 Teamlogo psfc.png 포항 스틸러스 K리그
→ 2004 ~ 2005 Teamlogo gsangmu.png 광주 상무 불사조 K리그 군복무
2006 Teamlogo sk.png SK 유나이티드 K리그
2007 ~ 2009 Teamlogo iufc.png 인천 유나이티드 K리그
2010 Teamlogo bifc.png 부산 아이파크 K리그
2011 ~ 2012 Teamlogo mipo.png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내셔널리그
2013 Teamlogo bfc2018.png 부천 FC 1995 K리그 챌린지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