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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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절 박충균

박충균 (1973년 6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사이드 풀백이다.



선수 프로필[편집]

  • 이름 : 박충균
  • 출생일 : 1973년 6월 20일
  • 신체 : 185cm / 76kg
  • 국가대표 경력
1995년 칼스버그컵 본선 대표
1995년 다이너스티컵 본선 대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본선 대표
200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8경기 출전)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6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10 3 0 0 1 0
1997 12 4 0 0 3 0
1998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2 1 0 0 0 0
2001 2 1 0 0 0 0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9 4 1 1 2 0
2002 10 4 0 1 2 0
2003 25 9 0 1 4 0
2004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14 9 0 0 3 0
2005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10 1 0 0 0 0
2006 Teamlogo dcfc.png 대전 시티즌 22 8 0 0 4 0
2007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10 6 0 0 2 0
통산 K리그 126 50 1 3 21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지도자 프로필[편집]

연도 소속팀 직책
2009 ~ 2010 Teamlogo sifc.png 성남 일화 천마 U-15 코치
2010 틀:나라자료 괌 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1 울산 현대 울산 현대 2군 코치
2012 ~ 2013 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3 ~ 현재 Teamlogo jbfc2018.png 전북 현대 모터스 코치


선수 생활[편집]

유소년 생활[편집]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건국대 4학년 시절 대학생 신분으로 대표팀에 발탁되며 주가를 높였던 선수이다.


수원과 성남 시절[편집]

건국대를 졸업하고 창단팀 우선지명으로 신생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였다. 수원에 입단한 후에는 김호 감독의 지휘 아래에서 측면 수비수로 첫 시즌 10경기 출전에 성공하며 준우승에 이바지하기도 하였고, 이듬해인 1997년에는 데뷔 시즌보다 두 경기 더 많은 12경기 나섰다. 그러나 1998년부터 동 포지션의 이기형울산 현대에서 이적해온 베테랑 신홍기, 멀티 플레이어 이병근에게 밀려 단 두 경기 출전에 그치고 말았고, 시즌 종료와 함께 상무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군 복무에서 복귀 한 뒤에도 이러한 사정은 비슷하여서 2001년 두 차례 경기에 출전하였고,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성남 일화 천마의 유망주 미드필더 황인수와 트레이드 되어 수원을 퇴단하게 되었다.



성남에 입단한 이후로도 2002년까지 정규 주전 선수로 오르지 못하고 말았고, 이 시기에 무명이었던 문삼진보다 적은 경기 출전을 보여주며 불안한 입지를 가져고 말았다. 이후 2003년에 수원에서 프로 입단 동기 선수였던 같은 포지션의 이기형 선수까지 영입하게 되면서 더욱 주전 경쟁이 험난해 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차경복 감독의 신뢰 속에 정상 컨디션을 회복한 모습으로 정규 주전으로 출전해 꾸준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경기인 25경기에 출전하며 기량이 만개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성남의 리그 3연패의 금자탑의 주인공으로 한 몫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산과 대전 시절[편집]

성남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뒤로 박충균 선수는 이안 포터필드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자유계약 신분으로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였다. 부산에 입단한 뒤로 14경기에 출전하며 부산의 2004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로 2005년부터 경기 출전 수가 10경기로 줄어들었고, 시즌 종료와 함께 대전 시티즌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대전에 입단한 박충균 선수는 베테랑으로 젊은 대전 선수들을 이끌며 측면 수비와 미드필더로 진두지휘하며 22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 2007년 부산의 엔디 에글리 감독의 요청에 따라 부산으로 복귀하였고, 10경기에 출전한 뒤 시즌 종료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를 결정하였으며, 2008년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1라운드 개막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러 현역에서 물러났다.


국가대표 생활[편집]

1995년부터 국가대표 선수로 이름을 올렸으며, 칼스버그컵 콜롬비아와 4강 경기에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 이끄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본선 대표 선수로 이상헌, 이임생, 최성용 등의 선수와 함께 발탁되기도 하였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올림픽 대표 선수로 이름을 올린 뒤로 프로에 녹아들지 못해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기도 했으나, 2003년 성남 일화 천마 소속으로 안정적인 활약을 선보여 움베르투 코엘류 신임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오랜만에 발탁되기도 하였으며, 일본우루과이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였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장신 선수임에도 측면 수비를 담당하는 선수로 이기형 선수보다 민첩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측면 수비로 최적의 요건을 갖춘 선수로 각광받기도 하였으나, 수비력에 있어서 가다듬어지지 않는 모습과 공격력에 있어서도 날카로운 면이 경쟁 선수들 보다 부족하다는 평가가 한동안 커 한동안 주전 선수로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후 30대에 접어든 2003년부터 안정적이고 터프한 수비를 보여주게 되면서 수준급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지도자 생활[편집]

부산에서 은퇴한 뒤로 부산의 지원 아래에서 1년 동안 지도자 연수를 받고 유소년 코치로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2009년부터 성남 일화의 지정 유소년팀인 풍생중학교의 코치로 부임하여 2010년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괌으로 떠나 잠시 감독직을 수행하기도 하였고, 2011년부터 울산 현대의 2군 코치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이후 2012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사제지간으로 연을 맺어본 바 있는 최강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행의 부름을 받아 사단에 합류하여 코칙직을 수행하였고, 최 감독이 전북 현대 모터스로 돌아간 2013년 7월부터 마찬가지로 최 감독을 따라 전북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에피소드[편집]

  • 유망주로 불린 선수이지만 프로 데뷔 이후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후 전성기가 늦게 찾아왔는데, 이 전성기 또한 길게 유지하지 못해 선수 생활에 있어 아쉬움이 컸다는 팬들의 평가가 있기도 하였다.
  • 전북 코치로 부임한 뒤로 기행(?)으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하였다. 2015년 6월, 박 코치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경기에서 2-1로 앞선 후반전에 흘러 나온 공을 잡으러 온 양상민을 보자 그 공을 뒤로 던져버리면서 몸싸움으로 이어지게 만들기도 하였고,[1] 이후 1년이 지난 2016년 7월 FC GS와 경기에선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분노하여 물병을 차버리고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했는데, 밖으로 나가면서 대기심 근처에 있는 의료기구를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결국 사후 징계로 3경기 정지와 제재금 500만을 부과받는 현역 시절 없었던 말썽(?)을 부리고 말았다.[2]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1996 ~ 2001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 1999 ~ 2000 상무 축구단 상무 축구단 실업축구 군복무
2001 ~ 2003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2004 ~ 2005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K리그
2006 Teamlogo dcfc.png 대전 시티즌 K리그
2007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K리그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