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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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하 선수 시절 골 세레머니.
옷깃을 세운 세레머니가 잘 드러나있다.

박건하 (朴建夏, Park, Kun Ha, 1971년 7월 25일~)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줄곧 활약 후, 은퇴하였다.

2013년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2016년 6월 서울 이랜드 FC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개인 정보[편집]

  • 이름 : 박건하 (朴建夏. Park Kun-Ha)
  • 출생지 : 대전광역시
  • 생년월일 : 1971년 7월 25일
  • 신체조건 : 키 180cm / 체중 75kg
  • 국가대표 경력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본선 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아시아예선 대표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95년 ~ 199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1경기 출장 5골 기록)
  • 수상 경력
1994년 실업축구 임마누엘 축구단 3관왕 및 득점왕 석권
1996년 K리그 신인왕 수상
  • 특이기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창단 1호골 득점자
수원 삼성 블루윙즈 첫번째 신인왕 수상자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팀 내 최다 출장 2위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6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34 0 14 6 2 0
1997 19 3 2 4 2 0
1998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2 9 2 0 6 0
1999 39 18 12 6 5 0
2000 19 2 6 5 2 0
2001 30 15 4 4 2 0
2002 26 12 2 2 1 0
2003 31 11 0 0 3 0
2004 31 9 1 0 3 0
2005 26 1 1 0 5 0
2006 15 4 0 0 2 1
2007 0 0 0 0 0 0
통산 K리그 292 84 44 27 33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 지도자 프로필
연도 소속팀 직책
2006 ~ 2007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플레잉 코치
2008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09 ~ 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8
(매탄고등학교)
감독
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
2011 ~ 2012 대한민국 대한민국 U-23 대표팀 코치
2013 ~ 2016 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6.06 ~ 2017.01 서울 이랜드 서울 이랜드 감독


선수 생활[편집]

아마추어 선수 경력[편집]

대전 출신으로 대전동중학교, 대전상고를 거쳐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경희대를 졸업한 뒤, 실업축구팀인 이랜드 축구단에 입단하면서 폭발적인 공격력을 선보였다. 1994년 박건하를 앞세운 이랜드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을 비롯해 3개대회를 석권하며 3관왕을 달성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춘계실업연맹전, 실업축구선수권을 모두 우승시키며 3개 대회 모두에서 박건하가 득점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랜드에서의 폭발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박건하 선수는, 코리아컵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첫 A매치를 치루었다.


프로 선수 경력[편집]

이랜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6년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계약금 2억 2천만원 연봉 1천 6백만원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수원 삼성의 창단 첫 경기에서 박건하는 수원 삼성의 1호골을 터뜨렸을 뿐만 아니라, 데뷔전 2골을 몰아치며 2:1 수원 삼성의 창단 첫승을 견인해 화제가 되었다. 폭발적인 데뷔전을 시작으로 프로데뷔 시즌 34경기 출장, 14 득점, 6 도움의 활약을 펼치며 1996년 K리그 대상 수상식에서 만장일치로 프로축구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의 화려한 신인 시절을 뒤로하고, 1997년 시즌 및 1998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후 첫 리그 우승 시절에도 수원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97, 98 양시즌은 박건하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시즌이기도 하였다. 외국인 선수들의 등쌀에 밀려 주전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던것. 설사 주전으로 나서도 골을 넣어야한다는 부담감이 짐으로 다가와 오히려 플레이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이처럼 2년간의 부진속에 신인 때 반짝한 공격수 정도로 묻힐뻔했던 박건하 선수는 1999시즌을 앞두고 김호 감독의 지원아래 절치부심, 99시즌 12골 6도움을 몰아치며 수원 삼성의 리그, 컵대회 전관왕 신화 달성에 주역으로 자리매김한다. 박건하 선수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2000년에는 황선홍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샤샤 드라쿨리치와 함께 잠시 3개월동안 가시와 레이솔의 임대선수가 되었다 다시 복귀하였다. J리그에서는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채 후반기에 다시 돌아왔고, 후반기에 수원의 상승세에 역할을 해냈다. 이듬해인 2001년 박건하는 산드로에 밀려 주전자리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후반 교체출전으로 알토란 같은 골을 엮어내며, 팀의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아시아슈퍼컵의 우승을 일구어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후 2002년 박건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바로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한 것이었다.[1]하지만, 공격수와 수비수의 체감은 확실히 다른것이었고 박건하 선수는 시즌 초반 다소간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하지만 시즌이 지나가면서 박선수는 어느정도 수비에 적응을 한듯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가끔씩 코너킥 공격가담에서 벼락같은 슈팅으로 골을 넣기도 하며 성공적으로 수비수로의 포지션 전환에 성공하였다. 2003년에는 팀의 공격진들이 줄줄이 부상을 당하면서 임시로 공격수로 뛰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원의 수비진을 책임지며 수비수로의 활약이 더 두드러졌다. 2004년 박건하는 무사와 함께 수비 라인에서 맹활약 팀의 세번째 우승을 일구어 내었지만, 이듬해인 2005년부터 노쇠화 기미를 뚜렷하게 보이며 수원의 10위 추락을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2006년부터 플레잉 코치로 등록되며 15경기를 더 뛴 박건하는 2007시즌이 끝나고 최종적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통산 292경기 출장. 수원에서만 올린 기록이기에 의미가 더욱 남다른 것이었다.


지도자 생활[편집]

코치 시절[편집]

2006년 은퇴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임명되었다. 1군 코치로 활약하며 2008년 수원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2010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산하 U-18 유소년팀인 매탄고등학교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수원에 윤성효 3대 감독이 부임한 뒤에는, 잠깐동안의 매탄고 감독 생활을 뒤로하고 수원 2군 코치로 승격되어 성인 선수들을 지도하였다. 2011년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대표 코치를 맡아[2] 홍명보 감독을 보좌하며 대한민국 올림픽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이후 홍명보 감독이 201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자, 박 코치도 국가대표 코치로 승격하여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실패 이후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놓는 등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음에도, 박건하 코치는 대한민국 대표팀 코치직을 계속해서 수행하였고 2016년 6월까지 율리히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하였다.


서울 이랜드 감독 부임[편집]

긴 시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에 역임하던 중, 2016년 6월 15일부로 서울 이랜드 FC 감독 자리에서 사임한 마틴 레니의 후임 감독으로 성균관대학교설기현과 함께 급부상하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난 2016년 6월 23일, 공식 기사로 박 코치의 서울 이랜드 FC 감독에 부임했다는 것을 알렸고 은퇴 후 처음으로 프로팀 감독을 지휘하게 되었다.[3] 그러나 부임 이후로 한동안 감독으로서 성장통을 겪는 듯한 모습으로 부진한 서울을 반등시키지 못하면서 초보 감독의 한계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말았다. 가을부터는 팀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로 최오백, 심상민, 김봉래 등의 선수들을 요긴하게 활용하며 조직력을 끌어오리는 등의 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2017년 시즌을 구상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2017년 1월 9일로 상호합의로 서울 감독을 사임한다는 기사와 함께 물러나고 말았다. 후임 감독은 영남대학교 김병수 감독.


별명과 특이 사항[편집]

  • 박건하가 공격수로 활약하던 시절, 그와 친하게 지내던 외국인 선수들은 친숙한 별칭으로 '찰리 박(Charlie Park)'이라고 불렀다.
  • 박건하는 득점을 한 이후 옷깃을 세우는 골 세레머니를 통해 주위에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위의 프로필 사진에 옷깃을 세우는 세레머니가 잘 나타나있다.
  •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선수인 서동현은 박건하를 존경하는 의미로 그의 세레머니를 따라하기도 하였다. 기사 자료


경력[편집]


갤러리[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이것은 전적으로 김호 감독의 뜻이었다. 영리한 상황 판단에 이은 볼 전개 능력과 헤딩력이 좋은 박건하의 장점을 수비에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었다.
  2.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이가 서정원이었으나, 서정원 코치가 대한민국 성인 대표팀 코치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그 빈 자리를 박건하 코치가 메워준 것이었다.
  3. 박건하, 서울 이랜드 신임 감독 낙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