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뮌헨 올림픽
소개
1972년 뮌헨 올림픽이란, 1972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올림픽을 말한다.
축구위키인 풋케위키에서 1972년 뮌헨 올림픽이란, 올림픽 축구 종목에 한정하여 다룬다.
진행 과정과 결과
본선에는 16개국이 참가했으며 A,B,C,D 4개조로 나뉘어 1차 조별예선을 치루었다. 1차 예선에서 각조 1,2위 8개팀을 선발한 후, 8개팀으로 A,B 조를 또 나누어 2차 예선 리그를 치루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결과는 4강팀 모두 동구권이 차지했고, 3.4위전은 무승부로 승패가 갈리지 않아 올림픽 축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메달 공동수상이 이루어졌다.
최종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 |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 |
득점왕 : 카즈미에르 데이나 (폴란드) - 9골 |
한국의 참가
대표팀 구성
1971년 9월부터 시작된 뮌헨 올림픽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 참가를 앞두고, 대한축구협회는 1970년부터 청룡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본선 진출을 위한 장기적인 행보를 보였고, 아예 1971년에는 메르데카컵등 다른 대회를 모두 2진급 멤버로 채우면서 뮌헨 올림픽 본선 참가에 사활을 걸었던바 있다. 그 결과 당시 한국 축구 최정예 멤버를 모두 끌어모으게 되는데, 아시아 예선 참가 명단은 아래와 같다.
포지션 | 이름 | 당시 소속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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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탭진 | |||
감독 | 한홍기 | KFA | |
트레이너 | 우상권 | 한양공고 코치 | |
강준영 | 한일은행 축구단 코치 | ||
선수단 | |||
GK | 이세연 | 신탁은행 축구단 | |
변호영 | 서울은행 축구단 | ||
필드 플레이어 |
김정남 | 외환은행 축구단 | |
김호 | 상업은행 축구단 | ||
서성오 | 제일모직 축구단 | ||
이차만 | 고려대학교 | ||
김호곤 | 연세대학교 | ||
김기효 | 해병대 | ||
최재모 | 육군 | ||
정규풍 | 육군 | ||
최길수 | 기업은행 축구단 | ||
박병주 | 서울은행 축구단 | ||
허윤정 | 서울은행 축구단 | ||
이회택 | 한양대학교 | ||
박이천 | 중앙대학교 | ||
박수일 | 외환은행 축구단 | ||
박수덕 | 기업은행 축구단 | ||
김창일 | 대한중석 | ||
정강지 | 신탁은행 축구단 |
아시아 예선 탈락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은 서울운동장에서 치루어졌는데 참가국은 한국, 말레이시아, 일본, 대만, 필리핀이었다. 대부분 일본 아니면 한국의 본선 진출을 예상했으나 막상 경기를 시작해놓고보니 결과는 전혀 달랐다. 1차전부터 말레이시아가 일본을 3:0으로 대파해버린것. 여기에 말레이시아는 2차전에서 한국마저 1:0으로 잡아버리며 대파란을 일으킨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결과였던 건 당연. 애초에 한국이나 일본이나 서로간의 대결에만 집중한터라 말레이시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게 패인이었다. 하필 1차전, 2차전 모두 비가 대차게 내리던 경기였기 때문에 이후부터 비가 오면 브라질도 말레이시아는 못이긴다는 묘한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는 한국이 홈 어드벤테이지를 업고도 패한 변명할 여지없는 완패였다. 슈팅수는 한국이 32 vs 말레이지아 8 이었지만, 양팀다 제대로 된 슈팅이 거의 없었다고. 후반 7분경 말레이시아 공격수를 이차만이 순간 놓치면서 실점하고 말았으며 이를 뒤집지 못한채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한국은 부랴부랴 나머지 잔여경기를 모조리 승리를 거두었지만, 말레이시아는 4전 전승을 기록하며 유유히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가져갔다.
뮌헨 올림픽 아시아 예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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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요약
- 아시아 예선 탈락
같이 보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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