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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랑즈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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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
울산이 [[김호곤]] 감독 체제로 들어선 2009년 2월 13일, 이상호는 3년 계약으로 [[개랑루즈]]로 이적하였다. <ref>당시 이상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적 이유를 묻는 팬들에게 "어쩔 수 없었다"라고만 짧게 답했다.</ref> 이후 3월 11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개랑 데뷔전을 치렀고, 14일 대전 시티즌 전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4월 12일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2011년까지 꾸준히 출장 기회를 얻으며 수원에서 활약했으나, 2012년 1월 이선수가 [[아랍에미리트]]의 축구팀인 알 사르자에 4개월 임대되었다는 소식이 타전되었다.<ref>친형인 [[이상돈]] 선수의 군대연기를 위해서였다는 카더라가 있다.</ref> 알 사르자에서 4개월간 활동 후, 2012년 5월 31일자로 수원 삼성에 복귀하였다. 복귀는 했는데 경기력이 작년만 못한 경기력이라 호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ref>다만 이상호의 부진은, 감독 스타일 변화와도 연관이 있었다. [[차범근]] 감독 지휘 아래에서는 [[멀티플레이어]]와 같은 모습으로 여러 포지션에서 활동하였다. 2009년에는 주전 스트라이커들의 동반 부진으로 인하여 [[배기종]]과 짝을 이루는 투톱으로 출전하기도 하였고, 사이드에서도 활약하였던 것이 그것. 그러나 [[윤성효]] 감독 아래에서는 거의 사이드에 고정시켜 기량 발전을 더디게 하였다는게 주된 평.</ref> 결국 2013시즌을 앞두고 [[상주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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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 [[김호곤]] 감독 체제로 들어선 2009년 2월 13일, 이상호는 3년 계약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 <ref>당시 이상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적 이유를 묻는 팬들에게 "어쩔 수 없었다"라고만 짧게 답했다.</ref> 이후 3월 11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수원 데뷔전을 치렀고, 14일 대전 시티즌 전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4월 12일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2011년까지 꾸준히 출장 기회를 얻으며 수원에서 활약했으나, 2012년 1월 이선수가 [[아랍에미리트]]의 축구팀인 알 사르자에 4개월 임대되었다는 소식이 타전되었다.<ref>친형인 [[이상돈]] 선수의 군대연기를 위해서였다는 카더라가 있다.</ref> 알 사르자에서 4개월간 활동 후, 2012년 5월 31일자로 수원 삼성에 복귀하였다. 복귀는 했는데 경기력이 작년만 못한 경기력이라 호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ref>다만 이상호의 부진은, 감독 스타일 변화와도 연관이 있었다. [[차범근]] 감독 지휘 아래에서는 [[멀티플레이어]]와 같은 모습으로 여러 포지션에서 활동하였다. 2009년에는 주전 스트라이커들의 동반 부진으로 인하여 [[배기종]]과 짝을 이루는 투톱으로 출전하기도 하였고, 사이드에서도 활약하였던 것이 그것. 그러나 [[윤성효]] 감독 아래에서는 거의 사이드에 고정시켜 기량 발전을 더디게 하였다는게 주된 평.</ref> 결국 2013시즌을 앞두고 [[상주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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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무와 그 이후 ===
 
=== 군복무와 그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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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랑에서 두 시즌 활약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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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에서 두 시즌 활약상 ===
 
2015년, 이상호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입단한 이래 시즌 최다 출장인 30경기 출전을 기록하였고, 각종 대회에서도 주전 자원으로 투입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서정원]] 감독은 이상호에게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롤을 부여하였으며, 이선수는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하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6년에는 수원의 팀 케미와 조직력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고, 여기에 이상호 선수는 부상 여파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한동안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는데, 경쟁 포지션인 [[장현수]], [[고차원]] 선수들이 더 부진한 바람에 주전 자리는 공고히 지키기도 했다. 그러다가 후반기에 네덜란드 국대 출신인 [[카스텔렌]]이 입단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적신호가 켜지기도 했으나, [[카스텔렌]]은 초반 3경기를 치르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우측 측면에 붙박이로 출전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스플릿 라운드를 앞두고 점차 컨디션을 완벽히 회복하였고, 하위 스플릿 라운드와 FA컵 결승 1·2차전에서 활발한 모습을 통해 수원의 6년 만의 FA컵 우승에도 일조하였다.
 
2015년, 이상호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입단한 이래 시즌 최다 출장인 30경기 출전을 기록하였고, 각종 대회에서도 주전 자원으로 투입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서정원]] 감독은 이상호에게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롤을 부여하였으며, 이선수는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하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6년에는 수원의 팀 케미와 조직력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고, 여기에 이상호 선수는 부상 여파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한동안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는데, 경쟁 포지션인 [[장현수]], [[고차원]] 선수들이 더 부진한 바람에 주전 자리는 공고히 지키기도 했다. 그러다가 후반기에 네덜란드 국대 출신인 [[카스텔렌]]이 입단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적신호가 켜지기도 했으나, [[카스텔렌]]은 초반 3경기를 치르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우측 측면에 붙박이로 출전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스플릿 라운드를 앞두고 점차 컨디션을 완벽히 회복하였고, 하위 스플릿 라운드와 FA컵 결승 1·2차전에서 활발한 모습을 통해 수원의 6년 만의 FA컵 우승에도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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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C 서울로 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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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즌 종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이슈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상호 선수는 2017년 시즌을 앞두고 FC 서울과 3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만든 것. 이는 서울 감독인 [[황선홍]] 감독이 강력한 요청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며, 수원도 이를 승낙하여 속전속결로 이적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수원 팬들은 이상호 선수에게 "배신자"나 "북상호"로 표한하기에 이르렀고, 서울 팬들은 과거 자신들을 "북패 짜식들"이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하며 탐탁치 않아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말았다. 여기에 새롭게 발표한 서울의 등번호에 이상호 선수가 과거 [[아디2|아디]]의 상징적인 번호였던 8번을 배정받은 데에도 비판 여론이 나오기도 하면서 순탄치 않은 생활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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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S로 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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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즌 종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이슈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상호 선수는 2017년 시즌을 앞두고 [[FC GS]]와 3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만든 것. 이는 GS 감독인 [[황선홍]] 감독이 강력한 요청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며, 수원도 이를 승낙하여 속전속결로 이적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수원 팬들은 이상호 선수에게 "배신자"나 "북상호"로 표한하기에 이르렀고, GS 팬들은 과거 자신들을 "북패 짜식들"이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하며 탐탁치 않아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말았다. 여기에 새롭게 발표한 GS의 등번호에 이상호 선수가 과거 [[아디2|아디]]의 상징적인 번호였던 8번을 배정받은 데에도 비판 여론이 나오기도 하면서 순탄치 않은 생활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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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스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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