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희주
곽희주 (1981년 10월 5일 ~ )는 2003년 광운대를 휴학하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입단한 중앙 수비수이다. 신인 시절 배번은 6번 이었으나 2004년부터는 쭉 29번을 달고 활약하였다. 2009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으나 시즌 중반 팀이 흔들리자 주장 자리에서 내려온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04년 수원의 3번째 K리그 우승을 이끌며 조 본프레레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에 의해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이후 대표팀에는 뽑히지 못하고 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는 '전설이 될 그 이름' 이란 별명을 얻었고 별명에 걸맞게 수원에서만 308경기에 출전하였으며, 2016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프로필[편집]
|
|
유소년 시절[편집]
숭덕공고를 졸업하고 광운대학교에 진학하여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선수 생활[편집]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편집]
곽태휘, 유상철, 김은중 과 함께 한쪽 눈이 안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축구선수이다. 자신의 신체적인 약점 때문에 수원에서 주전 경쟁이 어려워지자 낙심하고 은퇴를 결심하고 팀을 이탈하였으나 이창엽 당시 수원 트레이너의 설득으로 다시 선수 생활을 계속했고, 2004시즌 전 연습경기에서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차범근 수원 감독의 눈에 들어 수원의 주전 선수로 성장했다.
수비수 치고는 빠른 발과 강한 대인마크가 장점이며 2004년 초반에는 3백의 왼쪽 수비수로 기용되다가 이듬해에는 오른쪽 수비수까지 영역을 넓혔고, 주전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4백의 센터백까지 소화하며 수원 수비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고교시절 스트라이커로 기용되던 경험을 살려 세트플레이에서도 위협적인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잔부상에 시달리며 예전만 못한 경기를 보이고 있지만, 2010년 프로통산 200경기를 돌파하는등 수원 수비의 확고한 주전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대학 시절엔 주로 4백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하였으며 수원에서도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간간히 출장하였다. 본인은 시야의 문제 때문에 왼쪽에서 경기하는 것을 선호한다.[1] 2009년 주장에 선임됐다가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운재에게 주장직을 양도하며 안 좋은 기억을 남겼지만, 팀내 최고참이 된 2012년 다시 한번 주장에 선임되면서 윤성효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2013시즌 종료 후, 곽선수가 FA 대상으로 나오면서 곽선수의 거취와 관련해 입방아가 오르내리고있다. 곽희주 선수의 나이는 33세에 이르렀고 수원측은 재정적 부담 때문에 곽선수의 연봉을 맞춰주기 어렵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 결국 14시즌이 개막한 2014년 3월 현재까지 곽선수는 수원과의 재계약에 합의하지 못한채 FA 미아 상태가 되어버렸다.
수원을 떠난 이후[편집]
결국 2014년 3월 20일 FC 도쿄의 훈련에 참가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K리그를 떠나는게 기정 사실화 되었다.[2] FC 도쿄는 시즌이 개막하기 직전인 2014년 2월 우라와 레즈와의 연습경기에서 팀내 외국인 수비수인 마테우스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이탈하는 불운을 겪었고, 이후 가용할 수 있는 중앙 수비수 숫자가 3명 밖에 없는 상황이라 급히 수비수를 찾던 중 자유계약 신분인 곽희주를 테스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4월 15일 FC 도쿄는 곽희주 선수의 공식 영입을 발표하였다.[3] 등번호는 24번을 받았다고.. 하지만 입단 후, 9월 4일까지 리그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한[4] 곽희주는 결국 가정 문제를 이유로 도쿄와의 계약을 해지하였다. 이후 2014년 9월 카타르 스타스리그 팀인 알 와크라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적응 문제와 임금 체불 문제로 5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한채 퇴단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복귀[편집]
2015년 3월, 모 기자는 수원팬들이 반가워 할 소식이 있다는 언급을 하였고 며칠 뒤 곽희주는 플레잉코치로 수원으로 복귀하였다. 수원으로 복귀한 곽희주는 그간 중심을 잡아 줄 경험 많은 노장 선수가 없어 다듬어 지지 못한 모습으로 불안한 수비를 보였기에 대단히 반가운 소식. 복귀 후 실전 감각이 떨어진 곽희주는 폼 회복에 열중하며 젊은 수비수들을 지도하였고 2015년 5월 31일 인천 유나이티드와 경기에서 약 1년 반만에 교체 투입으로 복귀 경기를 치뤘다. 이후 2015년 6월 17일 SK와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홍철의 코너킥을 받아 헤딩골을 성공 시키며 2013년 11월 23일 울산 현대와 경기 이후 득점에 성공하여 팀 승리에 기여하였다. 또한 부상으로 스쿼드 운용에 변수가 생긴 6월부터 지속적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러나 8월 12일 대전 시티즌과 경기 이후로 부상으로 명단에 빠지게 되었으며 2개월 뒤에 복귀하였다. 곽희주는 경기장 안과 밖에서 중심을 잡으며 젊은 수비수들을 이끌었고 체력 문제로 풀타임으로 경기를 치루기 힘들어진 점을 제외하고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2016년에도 수원에서 함께하게 되었다. 2016년 수원에 이정수 선수의 복귀로 2008년 우승 주역인 두 선수가 모여 큰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너진 조직력을 두 노장 선수가 살리기에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곽희주 선수는 FC GS와 경기에서 혼신의 수비와 극적인 동점골로 수원을 구하거나 FA컵 8강전 성남 FC와 경기에서는 두 명의 선수가 퇴장당한 수적 열세 상황에서 연장전 쥐가 나 쓰러지는 와중에도 상대 선수 볼을 빼앗기 위해 몸을 날리는 투혼으로 레전드 답다는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전설이 되다[편집]
수비진 붕괴로 예상외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게 된 곽희주 선수는 여름에 펼쳐진 FC GS와 경기에서 경합 도중 착지 실패로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고 만다. 여기에 본래 부상이 많았던 터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하였는데 결국, 곽희주 선수는 잔여 리그에서 출전하지는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이 시기에는 선수로 역할보다 정신적 지주로 역할을 하였으며, 여름부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던 주장 염기훈 선수를 도와 선수단 분위기를 추스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이런 곽희주 선수의 역할로 가을부터 급격히 팀 분위기가 개선되면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극적인 FA컵 통산 4회 우승의 숨은 주역이 되었다. 일전에 곽희주 선수는 수원을 꼭 우승시키고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도 하였는데, 이를 지키고 2017년 1월 2일로 최종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로써 "전설이 될 그 이름"은 "전설이 된 그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수원에서 308경기 출전이라는 역사와 함께 매듭지었다.
플레이스타일[편집]
뛰어난 체력과 악착같은 대인마크, 간간히 터져나오는 타점 좋은 헤딩슛 등이 위력적인 전천후 수비수이나, 이따금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쪽 눈이 보이지않는 상태에서 이정도로 활약해주는 것도 대단한셈. 수비 전지역을 소화가능하고 한번에 길게 찔러주는 롱패스가 일품이다. 공격전개 과정에서 짧은 패스는 불안한 점도 있었지만 윤성효감독 부임 이후 특훈을 통해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지도자 생활[편집]
은퇴를 선언하면서 서울 소재의 대학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할 것이라 밝혔다. 아마도 모교인 광운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받고 있다.
에피소드[편집]
- 2013시즌 기준 현역 수원 멤버 중에 가장 오랜 시간 수원에서 뛰어오고 있는 선수이며, 최은성 선수 등 부동의 원클럽맨들이 잇달아 사라지면서 이제 K리그에 몇없는 원클럽맨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하고 있다. 그러나 2014시즌을 앞두고 기어코 수원을 떠나게 되면서 원클럽맨 타이틀을 내려놓고 말았다.
- 2004년 2월 팀 이탈 당시, 이창엽 코치의 "혹시 눈이 보이지 않는 후배 수비수들이 있다면 그들의 꿈이 되어야한다" 라는 격려에 힘을 얻어 1달 만에 2군 훈련에 복귀하였다고 한다.
- 선행 행위에 적극적인 선수로 유명하며, 타 프로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워낙 선행 사례가 많은지라 아래 항목에 후술한다.
선행[편집]
- 2007년부터 알로이시오 초등학교에 축구용품을 기증하고 있다. 곽선수의 이같은 선행 사실을 안 수원 구단 측은 '이런 선행은 기사화해서 알려야한다.' 라고 했지만 곽희주 선수가 극구 거부하였다고.. 어렸을적 장애를 극복한 것 때문에 사회봉사나 기부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2011년에는 다문화가정에 기부행사를 하기도 하였다.[5][6]
- 2008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리그 우승 후, 그랑블루에서 주최한 나눔의 행사 선수 용품 경매 행사에서 곽희주 선수가 2008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신었던 축구화가 62만원에 낙찰되면서 이 행사 최고가를 기록한 적도 있다. (이전 기록은 안정환선수의 축구화가 기록한 20만원이었다.)[7]
- 2013년 시즌 후 팀과 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구단의 성금 전달식에 참가하여 사비 200만원을 즉석에서 쾌척하기도 하였다. [8]
국가 대표 출장기록[편집]
경기 | 일자 | 장소 | 상대팀 | 최종 결과 |
대회 |
---|---|---|---|---|---|
2005년 6월 9일 | 카즈마 스타디움 | 쿠웨이트 | 4 - 0 |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5차전 | |
2005년 8월 4일 | 전주 월드컵경기장 | 북한 | 0 - 0 | 2005 동아시아연맹 선수권 2차전 | |
2008년 8월 14일 | 서울 월드컵경기장 | 3 - 0 | 남북통일기원 친선축구 | ||
2008년 2월 17일 | 충칭 올림픽스포츠센터 | 중국 | 3 - 2 | 2008 동아시아연맹 선수권 1차전 | |
2008년 2월 20일 | 북한 | 1 - 1 | 2008 동아시아연맹 선수권 2차전 | ||
2008년 5월 31일 | 서울 월드컵경기장 | 요르단 | 2 - 2 |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3차전 |
경력[편집]
시즌 | 소속팀 | 리그 | 비고 |
---|---|---|---|
2003 ~ 2013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클래식 | |
2014.04 ~ 2014.09 | FC 도쿄 | J리그 디비전1 | |
2014.09 ~ 2015.03 | 알와크라 SC | 카타르 스타스 리그 | |
2015.03 ~ 2016.12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클래식 | |
선수 생활 은퇴 |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