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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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데니스와 고종수.jpg
데니스 선수가 연장 골든골을 성공시킨 후, 고종수의 축하를 받고있다

데니스 락티오노프 (러시아어: Денис Владимирович Лактионов, 영어: Denis Vladimirovich Laktionov, 1977년 9월 4일 ~ )는 러시아계 대한민국 축구 선수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및 2012년부터 2013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하였다. K리그 대한민국 국적 귀화 선수 2호이기도 하며, 2013년 최종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였다.








프로필[편집]

  • 이름 : 데니스 블라디미로비치 락티오노프 (Denis Vladimirovich Laktionov)
  • 등록명 : 데니스 → 이성남 → 데니스
  • 출생일 : 1977년 9월 4일
  • 신체 : 178cm / 74kg
  • 수상 경력
K리그 도움왕 1997년
대한민국 FA컵 득점왕 1996년
K리그 컵대회 득점왕 1999년
K리그 베스트 11 1999년, 2000년, 2003년 선정
  • 국가대표 경력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본선 대표
1998 ~ 2002년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9경기 2골)
  • 특기 사항
K리그 외국인 중 최초 50-50 클럽 가입자
K리그 외국인 역사상 2호 귀화 선수
K리그 역대 통산 도움순위 2위 (57도움)
K리그 역대 외국인선수 통산 도움순위 1위 (57도움)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6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 23 5 3 2 0
1997 10 10 2 5 2 0
1998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18 9 5 4 5 1
1999 20 16 7 10 4 0
2000 27 13 10 7 7 0
2001 36 12 7 3 5 0
2002 20 15 5 7 5 0
2003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38 16 9 10 6 0
2004 21 10 4 2 1 0
2005 20 6 1 6 6 0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5 4 0 0 1 0
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16 14 0 2 4 0
2007 0 0 0 0 0 0
2012 강원 FC 강원 FC 10 10 1 2 1 0
2013 클래식 1 1 0 0 0 0
통산 K리그 클래식 272 116 57 59 49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7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선수 생활[편집]

K리그 이전[편집]

데니스는 1994년 FC 사할린 홀름스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95 시즌에 32경기에서 12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 득점자에 올랐다. 하지만 팀은 시즌이 끝난 뒤 러시아 2부 리그에서 러시아 3부 리그로 강등당하여 프로 클럽으로의 지위를 상실하였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18살에 불과하던 때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편집]

1995년 12월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창단 첫해 K리그 우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우선지명하며[1] , 힘찬 시동을 걸었다. 수원은 이러한 호화 멤버에 걸맞는 외국인선수의 영입을 원했고, 이에 바데아, 유리, 아디 등 해외에서 검증된 외국인 선수들을 보강했다.

이때 김호 감독은 러시아에서 데니스를 찾아냈고, 이적료 20만달러 연봉 3천만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다. '18살에 불과한 외국인 선수가 국내에 적응하겠냐?' 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김호 감독은 데니스를 중용했고, 이에 데니스는 보란듯이 K리그 첫 시즌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데니스는 첫 해 20경기에 출장, 5골과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소속팀 수원의 후기리그 우승과 FA컵 결승진출을 이끌어냈던것. 이후 데니스는 수원의 화려한 전성기와 함께했다. 팀 전체가 부진에 빠졌던 1997년과 불미스러운 일 (하단 에피소드 참조)로 6개월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1998년을 제외하고,[2] 데니스는 수원에서 매년 20경기 넘게 출장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과 도움을 기록하면서 수원이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특히 2000년 산드로C가 들어오면서 고종수 - 데니스 - 산드로C 로 이어지는 고데로 트리오는 상대팀들을 벌벌 떨게하는데에 충분했고, 수원은 이 트리오를 바탕으로 2001년과 2002년 아시아클럽선수권아시아위너스컵을 연속으로 재패하는데 성공했다.


성남 일화 천마 시절[편집]

성남 시절의 데니스

수원에서 성공적인 나날들을 보내던 데니스는 유럽 진출을 원하고 있었고, 이에 동의한 구단도 데니스를 놓아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데니스의 선택은 유럽이 아닌 성남 일화 천마였다.[3] 이유는 역시나 돈. 당시 성남은 2001년, 2002년 K리그를 재패한데 이어, 2003 시즌을 앞두고 피스컵과 K리그 3연패를 위해 초호화급 스쿼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성남은 전북 현대에서 김도훈을 영입한데 이어 박충균이기형의 영입을 확정지었고, 급기야 데니스마저 이적료만 15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데려오는데 합의하였다. 계약 기간은 2년에 (계약료 50만달러) 연봉 36만달러 (연간 18만달러), 경기당 출전수당 2천500달러.[4] 기존의 리그 2연패 멤버에 데니스까지 가세하자 성남은 K리그 최강의 위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성남으로 이름을 바꾼 데니스는 2003년 38경기에 나와 9골 10도움을 기록했고, 성남은 일찌감치 2003 삼성 하우젠 K리그 우승을 확정짓게 되었다. 2004년에도 데니스는 21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한데 이어 2005년 20경기 1골 6도움을 기록했다.



부산 아이파크 시절[편집]

2005년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부산 아이파크AFC 챔피언스리그K리그 플레이오프 준비를 위해 이성남과 다실바를 6개월간 임대해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부산의 철벽 플랫 4의 주축이었던 박준홍이 시즌 아웃되면서, 부산 전술은 근본부터 헝클어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선수단들도 전기리그 우승 후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제대로된 유기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성남은 부산에서 후기리그 5경기에 출전했지만,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고 부산도 중요하게 걸려있던 두개 대회에서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이성남은 짧은 부산 생활을 마치고 원소속팀 성남으로 복귀하였다.


다시 수원 시절[편집]

성남으로 돌아왔지만, 주전 경쟁에서 승산은 없어보였고, 이에 이성남은 친정팀 수원으로의 복귀를 추진하게 되었다. 수원은 이성남의 영입을 위해 당시 주축선수였던 안효연을 성남에 보내고 이성남을 데려오게 되었다. 이때 등록명이 다시 데니스로 바뀌게 되었다.



2006 K리그 개막전 FC GS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출전한 데니스는 패널티킥을 이끌어내며 활약하였고, 후반기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도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후기리그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듬해 데니스는 서혜부 부상을 당하면서 장기간 재활에 돌입했고, 끝끝내 재활에 실패하며 수원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리고 말았다.


K리그 이후와 강원 입단[편집]

수원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데니스는 2008년 당시 러시아 2부 리그의 FC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적하여 러시아 무대로 복귀하여 2시즌 동안 27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시비르의 승격을 이끌었으나, '승격후 외국인 선수 교체'로 인해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2012년 초까지 데니스는 니폼니쉬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FC 톰스크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했으나, '승격후 외국인 선수 교체'로 인해 방출. 2012년 7월 강원 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학범 강원 FC 감독은 데니스의 영입을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2012년 7월 25일 K리그 연맹에서 수원 삼성에 등록되어있던 데니스의 등록말소를 공시해 강원 FC 입단이 거의 기정 사실화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있다. 결국 모두의 기대대로(?) 2012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데니스는 강원에 등록되는데 성공하였다. 무려 6년만의 K리그 복귀로 직함은 플레잉코치라고 한다. 강원 입단 후, 김학범 감독의 조련아래 교체 자원으로 강원 경기를 소화하였으며, 노장으로서의 관록과 팀 장악력을 앞세워 지쿠와 함께 강원 FC의 1부리그 잔류에 첨병이 되었다.

하지만 2013시즌에는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지,[5] 1경기 교체출장에 그쳤고, 결국 2013년 6월을 끝으로 강원 FC에서 퇴단하였다. 이후 수원 삼성의 U-15팀인 매탄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해 지도자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014 시즌이 끝난 직후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갔다.


플레이스타일[편집]

탄탄한 하드웨어로 그라운드에서 상대 수비수들의 압박에도 밀려나지 않고,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와 공간활용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문전에서의 파워넘치는 돌파와 마무리 능력을 갖추었고,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도 뛰어났다. 하지만 2004년에 접어들면서 노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을 받았으며, 팀을 자주 옮겨다님에 따라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의 세밀함도 갈수록 무뎌져가 아쉬움을 남겼다.


근황[편집]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 유소년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던 데니스는 이후 포르투갈 유소년 축구팀에 입단한 큰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2월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스페인에서 전지훈련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포르투갈에서 스페인 마르베야까지 700km를 운전해서 달려오는 의리를 보여주며 최근 근황을 알렸다.[6]


에피소드[편집]

문제의 김주성 목밟기 장면
  • 1998년 9월 23일 구덕운동장에서 벌어진 부산 대우 로얄즈와의 경기에서 데니스는 후반 김주성이 파울을 한뒤 넘어져 있던 이병근의 머리를 차자 이에 흥분. 김주성에게 보복폭행을 가했다. 이를 지켜본 주심은 데니스에게 다이렉트 퇴장을 명했고, 주심의 퇴장 명령을 받은 데니스는 정작 김주성은 카드를 받지않은 것에 분노해 거세게 항의했다. 항의하던 데니스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넘어져 있는 김주성의 목을 밟았다. (옆 화면 참조) 이에 흥분한 구덕 관중들이 물병을 던지는 등 그라운드는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7] 근데 하필 이 경기가 KBS를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는게 문제였다. 결국 K리그 상벌위원회에서 데니스는 7개월 출장정지에 벌금 350만원, 원인제공 당사자 김주성은 2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데니스는 너무 출장정지 처분이 과하다라며 분통을 터뜨렸고, 이에 연맹은 참작하여 6개월로 기간을 줄여주었다. 이럴거면 기간을 줄이지 말든가 -_-;;; 더욱이 비슷한 시기 벌어진 유상철김대수 선수의 충돌사건에서의 징계[8]와 달리 데니스 선수에 대한 징계가 너무 과해 외국인 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었다.
  • 성남으로 이적한 데니스는 곧바로 귀화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고, 성남 이(李)씨를 시조로 하여 이성남으로 귀화하였다. 이에 수원팬들은 데니스를 키워준 수원을 버리고 성남의 이름을 택하냐라고 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오해로, 성남 이씨 운운은 성남 일화 측의 언플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데니스라는 이름으로 귀화했다는듯. 심지어 2006년을 끝으로 러시아로 복귀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여, 러시아 리그 내에서 외국인 선수로 분류되고 있는 중이다.[9] 어지간히 한국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결국 2012년 한국 복귀를 모색하면서, 한국에 아예 눌러사는게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 결국 가족들까지 모두 한국으로 귀화하여 대한민국에 계속 눌러살게 되었다. 데니스의 딸이 체조선수이기 때문에 경쟁이 심한 러시아보다는 상대적으로 국가대표 경쟁이 덜한 대한민국에서 체조선수 생활을 하는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 가족들까지 귀화를 결정했다고 한다.
  • 성남으로 이적한 데니스는 유독 수원과의 경기에서 강점을 보였는데, 그때마다 수원 서포터들을 도발하는 세레모니를 보여주며 수원팬들의 미움을 받았다. 근데 2006년 복귀.... 세상 일이란 정말 모르는거다.
  • 2005년 7월 이성남 선수의 부산 입단 당시, 위의 김주성 사건을 기억하고있었던 올드 부산팬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팬들 의견 무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파크측은 이성남을 영입했고, 이에 당시 POP 회장이 부산 서포터를 탈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었다.


갤러리[편집]


경력[편집]

시즌 소속팀 리그 비고
1994.01 ~ 1995.12 러시아 FC 사할린 홀름스크 러시아 2부 리그
1996.01 ~ 2002.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03.01 ~ 2005.12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 2005.06 ~ 2005.12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K리그 임대
2006.01 ~ 2007.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2008.01 ~ 2009.12 러시아 FC 시비리 노보시비르스크 러시아 내셔널 풋볼 리그
2011.01 ~ 2011.12 러시아 FC 톰 톰스크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2012.07 ~ 2013.06 강원 FC 강원 FC K리그 클래식
선수 생활 은퇴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당시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선수들 중에 수원에 지명된 선수로는 이기형, 이경수, 박충균. 그리고 본선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맹활약하였던 이운재, 조현두, 조현, 이병근 등이 있었다
  2. 김주성 목밟기하던 시절도 데니스는 18경기에 출전하고 있었다
  3. 어째 모 선수가 떠오르는데?
  4. 이외에도 성남은 이싸빅, 윤정환도 영입해왔는데 이때 쏟아부은 이적료가 총합 55억이었다. 당시 대전 시티즌의 1년 예산이 30억 남짓하던 시절인걸 생각하면 얼마나 돈을 퍼부었는지 이해가 가리라.. -_-
  5. 한국 나이로 무려 37세...
  6. 수원 삼성 캠프의 반가운 손님, 친정팀 보러 700㎞를 단숨에 달려온 데니스
  7. 난장판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당시 김주성 선수는 부산 아저씨들에게 있어 축구의 신이었다! 열혈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산 아저씨들이 어찌했을지 짐작이 가리라.. 그때 소주병이 포탄처럼 경기장에 떨어지는 광경이 장장 20분간 계속되었고 경기 종료 후 심판은 달아났다. 분이 안풀린 부산 아저씨들은 경기장 밖에 있던 수원 삼성 선수단 버스 및 서포터 버스를 막고 데니스 @#!$! 를 내놔라 고 아우성을 쳤고 이같은 대치상황은 1시간동안 계속되었다. 대치 상황동안 소주병은 버스를 향해 계속 날아들었고, 버스는 말 그대로 반파. 다행히(?) 버스를 불태우려는 사람들은 없어 축구판 해태버스방화사건을 찍지는 않았다. 당시 구덕에 원정갔다 봉변(?)당한 수원팬들의 회고를 빌리자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줄 알았다.고..
  8. 당시 유상철 선수는 김대수 선수의 뺨을 때리고, 김현석 선수는 김선수의 정강이를 걷어찼음에도 유상철 3경기 출장정지에 김현석은 어떤 처분도 받지 않았었다.
  9. 당연히 러시아 축구팬들은 데니스에 대한 감정이 과히 좋지않다. 특히 2002년 월드컵에서 러시아 국가대표로 까지 뛰었던 선수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러시아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2009년 시비르에서 뛸 당시 시비르가 승격된 후에도 끝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고, 보통의 팀들이 하는 '승격후 외국인 선수 교체'로 인해 방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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