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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
 
=== 잉글랜드 ===
2007년 1월 이동국은 당시 [[프리미어리그]]소속팀이던 [[미들스브러]]에 입단하게 하였다. 한국인 선수로는 4번째 그리고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는 첫번째 선수가 되었다. 데뷔전에서 골대를 맞추는 아쉬운 장면을 보여줬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동국의 잉글랜드 생활을 험난하기만 하였다. 리그에서는 골 기록은 전혀 없었으며 FA컵과 칼링컵에서 골을 기록하였으나 그 마저도 하부리그팀과의 경기에서 나온것이였다. 07/08시즌이 끝나고 이동국은 미들즈브러를 떠나 국내로 복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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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이동국은 당시 [[프리미어리그]]소속팀이던 [[미들스브러]]에 입단하게 되었다. 한국인 선수로는 4번째 그리고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는 첫번째 선수였다. 데뷔전에서 골대를 맞추는 아쉬운 장면을 보여주며 좋은 출발을 했지만, 이동국의 잉글랜드 생활은 험난하였다. 리그에서는 골을 기록하지 못하였고 FA컵과 칼링컵에서 하부리그팀들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07/08시즌이 끝나고 이동국은 미들즈브러를 떠나 국내로 복귀하게 된다.
 
 
  
 
=== 성남 일화 ===
 
=== 성남 일화 ===

2012년 7월 11일 (수) 00:09 판

파일:이동국.jpg
전북 현대의 이동국

이동국(1979년 4월 29일 ~ 현재)은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다.



프로필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1998 AFC U-19 선수권 참가
1999 FIFA U-20 월드컵 참가
2000 시드니 올림픽 참가
2000 아시안컵 참가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
2004 아시안컵 참가
2005 동아시아연맹선수권
2007 아시안컵 참가 (동남아 4개국)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통산 A매치 91경기 출장 28골)
  • 프로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포항 스틸러스 1998 24 10 11 2 1 0
포항 스틸러스 1999 19 5 8 4 1 0
포항 스틸러스 2000 8 1 4 1 0 0
포항 스틸러스 2001 17 5 3 1 1 0
포항 스틸러스 2002 21 12 7 3 4 0
광주 상무 2003 27 4 11 6 1 0
광주 상무 2004 23 7 4 5 2 0
광주 상무 2005 1 1 0 0 0 0
포항 스틸러스 2005 24 4 7 4 3 0
포항 스틸러스 2006 10 4 7 1 1 0
성남 일화 천마 2008 13 10 2 2 0 0
전북 현대 모터스 2009 32 5 22 0 2 0
전북 현대 모터스 2010 30 8 13 3 2 1
전북 현대 모터스 2011 29 6 16 15 2 0
전북 현대 모터스 2012 14 6 8 3 4 0
통산(K리그) - 292 115 123 50 24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6월 22일 기준.


유소년생활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출생하여,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스 클럽인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 때 부터 대형 스트라이커 유망주로 각광받은 이동국은 1998년 포항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프로시절

K리그~독일진출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이동국은 K리그와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현재 AFC챔피언스리그)에서 대활약,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K리그 신인상을 차지 하면서 황선홍의 뒤를 이을 대형 유망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각 급 연령대별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의 활약의 절정은 1998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네덜란드와의 경기였는데, 팀이 5-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체 투입, 위력적인 중거리 슛으로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2000년대 초반, 대한축구협회의 주도 하에 유망한 선수들의 해외 이적 러시가 나타났는데, 이동국 역시 K리그 2000 종료 후 독일 1.분데스리가소속 베르더 브레멘에 6개월 임대 이적을 하게 되지만 좋지 않은 무릎상태로 인해 7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월드컵 대표선발에 위기를 느낀 이동국은 결국 2001년 6월 원 소속팀인 포항으로 복귀를 한다.


국내복귀 이후

포항 복귀 후 2002 FIFA 월드컵 대표팀 선발을 위해 절치부심하던 이동국은 2002시즌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고, 2002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표팀이 메달을 따내지 못하자 광주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다. 상무에서 전역한 뒤, 2005시즌 후반기부터 원 소속팀인 스틸러스에 합류하였으며, 2006시즌 초반까지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월드컵 지역 예선 통과에 크게 공헌하였다. 본선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펼칠 것으로 기대되던 시점, 이동국은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전방 십자 인대가 완파되는 부상을 당하며 2006 FIFA 월드컵에 출장할 수 없게 되었다.

잉글랜드

2007년 1월 이동국은 당시 프리미어리그소속팀이던 미들스브러에 입단하게 되었다. 한국인 선수로는 4번째 그리고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는 첫번째 선수였다. 데뷔전에서 골대를 맞추는 아쉬운 장면을 보여주며 좋은 출발을 했지만, 이동국의 잉글랜드 생활은 험난하였다. 리그에서는 골을 기록하지 못하였고 FA컵과 칼링컵에서 하부리그팀들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07/08시즌이 끝나고 이동국은 미들즈브러를 떠나 국내로 복귀하게 된다.

성남 일화

전북 현대

2008년 최악의 성적을 받아든 성남 프런트는 김학범 감독을 경질하며, 팀을 새로이 리빌딩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성남의 레전드인 신태용을 감독으로 임명하게 된다. 신태용 감독 역시 리빌딩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김상식, 박진섭, 이동국 등의 고참선수들을 방출하고 젊은 선수들을 받아들이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때 조재진의 이적으로 공격수 자리가 비어있던 전북 현대 모터스는 재빨리 영입작업을 펼쳤고 이적료가 발생하는 두 선수의 이적료를 대신하여 문대성, 홍진섭을 내주는 2:2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다른 팀과의 영입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사실 2008년 후반기 성남의 부진에 큰 몫을 담당(?)했던 이동국 선수였기에 이런 최강희 감독의 결정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선이 많았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시즌 전 인터뷰에서 이동국의 단점을 묻는 질문에 "특별한 단점은 없다 그냥 골만 넣어주면 된다"며 이동국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다.


에피소드

  • 이동국은 역술인의 도움으로 2007년 李國에서 李國으로 개명(?)하게 되었다..[1]
  • 독일 월드컵 개막을 6개월여 앞두고 이동국은 차두리와 함께 코카콜라 CF를 찍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모두 2006년 독일 월드컵 엔트리에 제외 되었다. 이에 축구팬들은 '코카콜라의 저주'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같이 보기

외부링크

참고


틀:K리그 MV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