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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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를 수선하는 현역시절의 홍덕영

홍덕영 (洪德泳, 1926년 5월 5일 ~ 2005년 9월 13일 )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전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이다.



프로필

  • 이름 : 홍덕영
  • 출생일 : 1926년 5월 5일
  • 신체 : 176cm / 70kg
  • 수상 경력
1974년 FIFA 국제축구연맹 심판특별상
2005년 축구 명예의 전당 선수부문 헌액
  • 국가대표 경력
1947년 ~ 195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 대표
1954년 FIFA 스위스 월드컵 본선 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통산 A매치 18경기 출전 61실점)[1]

지도자 프로필

연도 소속팀 직책
1954 - 1962 고려대학교 감독
1969 - 1976 서울은행 코치.감독[2]
197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유소년 생활

함남중학교(함흥고등보통학교) 1학년 시절에 축구를 시작하였으며,당시 홍씨의 집은 함흥에서 광문당이라는 서점 겸 체육사를 운영했으며,체육사는 축구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고,홍씨의 큰 형님은 함흥 축구단의 총무를 맡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축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광복 이후에 함흥이 공산화의 기미를 보이자 서울로 월남하였고, 보성전문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려고 청량리행 전차를 기다리는중 보성 재학생들이 "우리 축구는 공격도 수비도 다 좋은데 골키퍼가 약해서 문제란 말이야."라는 대화를 듣고 쉽게 이점을 공략하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 축구부 주장 김용덕을 찾아가 테스트를 치뤄 통과했고, 재학생 선수들은 학교에 홍 선수를 적극 추천하였고, 입학성적도 우수하여 합격한다.

국가대표 생활

1948년 런던 올림픽 대표로 차출됐으나 후보 선수였기 때문에 출전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차순종이 연습경기중 허리부상을 당하자 본선에 출전한다. 첫 경기에서 멕시코를 5-3으로 꺾으며 8강에 진출했지만 이 대회의 우승팀 스웨덴에게 0-12로 대패하며 탈락한다.[3]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에 출전,대한민국의 은메달 수상에 기여했으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의 예선과 본선에 참가, 헝가리전(0-9)과 터키전(0-7)에 출전했으며 이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감했다.

선수생활

고려대학교 졸업이후[4]조선방직에 입단하여 활약하였다.

은퇴 이후

은퇴 이후 국제심판으로 활약했으며 모교인 고려대학교서울은행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였다. 1971년엔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킹스컵 우승을 이끌어냈다.

별세

2005년 9월13일 서울 옥수동 자책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으며 9월15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대한축구협회장으로 고인의 장례가 치뤄졌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파주 동화 경모공원에 안장되었다.

에피소드

  • 1948년 당시에는 멀티볼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기당 하나의 공만을 가지고 경기를 했는데, 경기중 스웨덴 선수들의 슛팅을 버티다 못한 홍덕영 선수는 공을 잡으면 관중석으로 내질러 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골킥을 차고 되돌아가 몸을 돌리고나면 이미 공은 스웨덴 선수가 받아서 패널티 에어리어에 와 있었다고...당시 스웨덴의 슛팅은 48개였다고 한다.
  • 은퇴 이후에 잠시 직장 생활을 하였지만 직장에 축구선수 출신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축구선수는 무식하다는 편견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2]
  • 은퇴 이후에 국제심판으로도 활약하였다.
  • 1996년 12월 정남식,민용식씨와 함께 축구인을 대표해 2002 월드컵 조직위원으로 임명되었다.
  • 2001년 12월2일 부산에서 있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조추첨에서 조추첨자로 탤런트 송혜교씨가 선정되면서 축구팬들의 빈축을 샀으며 차범근씨와 함께 홍덕영씨가 조추첨자로 선정되지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을 온라인에서 토로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참고 문헌

  • 한국축구 100년사(증보판) 218P~219P

참고

  1. 대한축구협회 선수별 A매치기록[1]
  2.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1969년부터 감독을 했다고 나와있지만 서울은행 문서에도 보면 알 수 있듯이 1969년 서울은행 축구단 창단당시 홍덕영씨는 코치였다.
  3. 홍덕영 선수의 일화중 푸스카스의 슛을 막느라 가슴에 멍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스웨덴전의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외부링크 참고.
  4. 재학중에 보성전문에서 종합대학으로 바뀌며 고려대학교로 교명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