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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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시절 샤샤

샤샤 드라큘리치 (Sasa Drakulic, 1972년 8월 28일 ~ 현재)는 세르비아 국적 스트라이커로, 부산 대우 로얄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성남 일화 천마에서 맹활약한 스트라이커이다. 그가 거친 팀 중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한 팀이 없어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K리그 역대 최강 외국인선수를 들라고 하면, 포항제철 아톰즈라데와 함께 반드시 손꼽히는 선수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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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편집]

  • 이름: 샤샤 드라큘리치 (Sasa Drakulic)
  • 출생일: 1972년 8월 28일
  • 출생지: 유고슬라비아 빈코브치
  • 신체 조건: 190cm/84kg
  • 수상 경력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 (1998, 1999)
K리그 득점왕 (1999)
  • 특기사항
K리그 선수별 역대 통산 득점 순위 5위 (104골)
K리그 외국인 선수 중 통산 득점 1위
K리그 외국인 선수 중 역대 최다 K리그 우승 (6회)
K리그 역대 최다 해트트릭 (6회)
K리그 1경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 (1경기 5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K리그 기록
연도 소속팀 리그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5 대우 로얄즈 대우 로얄즈 K리그 31 18 8 0 4 0
1996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대우 로얄즈 20 12 3 5 5 0
1997 28 14 11 5 5 0
1998 Teamlogo sbfc.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18 6 8 1 4 0
1999 37 6 23 4 7 1
2000 14 3 5 1 3 0
2001 성남 일화 천마 성남 일화 천마 34 11 15 4 3 0
2002 37 10 19 8 4 0
2003 39 27 8 9 2 1
통산 K리그 271 111 104 37 43 2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6년 12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프로데뷔[편집]

샤샤는 93-94 시즌 유고의 명문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샤샤는 첫 시즌 11경기에 나와 2골을 기록, 신인으로써는 나쁘지 않은 기록을 세지만, 워낙 레드스타에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샤샤는 리저브팀에서 대부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부산 시절[편집]

베오그라드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한 낯선 얼굴의 이방인이 샤샤를 찾아왔다. 바로 부산 대우 로얄즈안종복 단장이였다. 당시 대우는 체코 출신의 골키퍼 코스텔니크를 테스트한 뒤 돌려보낸 상황이었다. 다시 외국인 선수를 찾기위해 출장을 나선 안 사장은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해 1부리그 레드 스타의 리저브 멤버였던 샤샤를 영입 대상으로 낙점했다. 안 사장은 "K리그에서 성공을 일군 라데도 있다. 너도 같이 한국으로 가자"고 설득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내전으로 불안하던 상황이었는데, 샤샤는 유고슬라비아에 비해 안정된 사회경제 체제를 갖춘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곧이어 부산은 레드 스타에 이적을 제의하였고, 레드 스타는 팀에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샤샤를 30만 달러라는 싼 값에 부산 대우로 이적시켰다.

한국에 온 샤샤는 1995시즌 25경기에 나서 8골을 기록, 라데를 밀어내고 득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듬해 샤샤는 왼쪽 발목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탓인지 19경기 3골로 부진했다.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제몫을 하는 듯 했지만, 공격수가 골을 넣지 못하니 자신의 실력을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부산은 그러한 샤샤의 방출을 고려할 정도가 되었지만, 샤샤를 다시 믿어 주었다. 샤샤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1997시즌 놀라운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 해 영입된 마니치와 단짝을 이루면서, 11골 4도움을 기록했다. 성적만 보면 평범할지 모르지만 그가 넣은 골들의 대부분은 승부를 결정짓는 골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샤샤의 효과는 마니치에게도 전이되면서 마니치는 7골 3도움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샤샤와 마니치 콤비의 대활약은 부산 대우가 K리그 우승, 리그컵 우승 등 전관왕 신화를 써 나가는 데 수훈갑이 되었다.



수원 시절[편집]

수원 시절 샤샤
으앙 멋있다..ㅜ

1998시즌에 공격진의 단체 부진으로 고군분투하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검증된 공격수를 영입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당시 수원은 박건하가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미하이가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전북에서 데려온 비탈리도 좋지못한 기량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시즌 컵대회에서 4골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친 샤샤가 물망에 올랐다. 한편, 샤샤는 자존심이 센 성격 탓에 부산 대우의 코칭 스탭과 갈등 국면에 접어드는 일이 잦았고, 그 때문인지 부산 역시 샤샤를 보낼 팀을 찾고 있었다. 결국 부산과 수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며 샤샤는 수원으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료는 69만9천달러 (한화 약 9억6천만원), 연봉 8만4천달러. 30만달러에 샤샤를 영입했던 부산은 2배 이상의 가격에 되팔게 된 것이었다.

당시 수원에는 고종수, 데니스, 김진우 등 샤샤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해 줄 수 있는 미드필더들이 많았고, 샤샤는 물 만난 고기마냥 연이어 골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부천 SK와의 K리그 1998 개막전에서 샤샤는 데뷔 골을 터트렸고, 이에 자극을 받은 미하이와 비탈리가 폭발하며 팀은 5대1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시즌 종료까지 이어젔고, 샤샤는 8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경기장을 종횡무진 누볐고, 샤샤는 수원의 첫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며 팬들에게 '우승청부사'라는 이름을 다시 각인시켰다. 하지만 98 시즌은 샤샤의 활약상에서 서막에 불과했다. 99시즌 수원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뛰던 서정원까지 영입하면서 국가대표급 미드필드 구성에 방점을 찍었고, 샤샤는 미드필드의 빵빵한 지원에 힘입어 상대팀 골문에 맹폭을 가했다. 당시 부산 소속이었던 안정환과 벌이던 득점경쟁이 샤샤의 득점본능에 불을 붙였고, 샤샤는 1999년 9월, 부천 원정경기에서 4골을 집어넣는 등 공격 본능을 한껏 일깨웠고, 결국 18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안정환을 밀어내고 득점왕에 올랐다. 당시 샤샤의 활약으로 수원은 창단 4년 만에 3개의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웠고, 정규리그에서도 2위 부천을 멀찍이 따돌리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일찌감치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샤샤가 상대해야했던 팀은 친정팀 부산, 박건하의 결승골에 힘입어 승리한 수원은 2차전 수원에서 시즌을 끝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도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아 1대1로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연장전반 8분 장지현의 왼발 크로스가 샤샤에게 날아갔고, 헤딩으로 따내기에 공이 너무 멀었다고 생각한 샤샤는 손으로 펀칭하듯이 공을 골대안으로 밀어넣었다. 명백한 핸드볼이었지만, 중국 출신의 순 바오제주심의 퇴근본능 발동은 이 어이없는 골을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샤샤는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득점왕까지 거머쥐었지만 괘씸죄에 걸려 MVP를 안정환에게 내주고 말았다.[1]


J리그 시절[편집]

샤샤는 2000시즌을 앞두고, 황선홍과 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J리그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했다. 하지만, 부상과 모친상의 충격에 제대로 적응도 하지 못한 채 2경기만 뛰고 돌아와야 했다. 수원에 입단한 황선홍도 무릎 부상의 여파로 1경기만 출장하고 레이솔로 돌아갔다. 양팀 다 손해를 본, 트레이드 사상 유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샤샤는 다시 수원으로 돌아온, 샤샤의 빈 자리에는 이미 산드로가 들어와 있었고, 샤샤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결국 수원은 00시즌 종료후 샤샤를 자유계약 선수로 놓아주게 된다.


성남 시절[편집]

자유 계약으로 이적 시장에 나온 샤샤는 뛸 팀을 모색했고, 전남이 임대계약을 제의하였다. 하지만 성남이 계약금 130만달러(약 15억 6,000만원), 3년간 연봉 총액 90만달러(약 10억 8,000만원ㆍ매년 30만달러)의 좋은 조건을 제의하였고, 샤샤는 매력적인 제안을 뿌리칠 수는 없었는지 성남 입단에 합의했다. 샤샤는 전성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구단 관계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 계약 했지만, 샤샤는 수원에서 뛰던 시절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2] 2001시즌 25경기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K리그 우승을 이끈 샤샤는 2002년 26경기 9골로 팀의 2연패에 공헌, 2003년 27경기 8골을 기록하며 팀의 3연패를 이끌었다. 샤샤는 역사적인 3연패에 화려하게 방점을 찍고선, 2004년 리빌딩을 시작한 성남을 떠나 사이프러스의 AEK 라르나카(AEK Larnaca)로 이적했다.


이후[편집]

샤샤는 2005년 보이보디나 노비 사드 (Vojvodina Novi Sad)를 거쳐, 2005-2006시즌 CSK 피바라 (ČSK Pivara)에 임대, 2006-2007시즌, 믈라도스트 아파친 (Mladost Apatin)에 이적해 2시즌 동안 뛰기도 하였고, 2010년에는 세멘트 베오신 (Cement Beočin) 팀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2006-2007시즌 믈라도스트에서 활약하던 샤샤는 UEFA 유로파 리그하이버니안 전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등 제 2의 전성기를 맞는 듯 하였으나, 결국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샤샤는 2010년 세르비아의 세멘트 베오신을 종착역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참 오래도 뛰었다 후아......


플레이스타일[편집]

트러블 메이커에다 독선적인 플레이와 정적인 움직임 등 여러가지 면에서 단점을 두루 갖춘(?) 선수였지만, 페널티 박스 내에서의 무시무시한 집중력과 골결정력, 슈팅 감각으로 K리그 무대를 평정했던 전설적인 공격수이다. 골결정력만 놓고보면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데 거의 이견이 없을듯. 이런 샤샤가 부산, 수원, 성남을 거치면서 각각 다르게 플레이에 이용되었는데, 부산 시절에는 이차만 감독에 의해 2선까지 내려와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공격형 미드필더 보직을 맡았고, 수원 시절에는 스트라이커, 성남 시절에는 차경복 감독의 지시로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면서 무조건 PA 근처에서 골만 노리는 골넣는 기계(?)로 이용되었다. 샤샤 성격을 봤을때는 성남 시절이 제일 자신에게 맞았을듯.[3]


에피소드[편집]

  • 유고가 티토 사후 혼란스럽던 1990년대 초반에는 군인신분이었다. 키가 크고 훤칠한 외모탓에 저격을 당할뻔하기도 했다고 ;; K리그에서 뛸당시인 1998년 1999년에도 자신의 모국이 나토의 공습을 당하자 나토 공습에 항의하는 세레머니를 펼치기도 했었다.
  • 안종복 단장이 샤샤를 영입하러 갈 당시에 공항에서 억류되었다고 한다. 간신히 공항에서 풀려나 레드스타 연습경기를 참관한 끝에 샤샤의 영입을 성사시켰다고.
  • 샤샤는 현재까지 미혼이며 한국에 있던 시절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했다. [4]
  • 1995년 입단한 샤샤는 한국 거주 5년을 채운 2000년 한국 국가대표 발탁을 위해 귀화시험을 준비하였으나, 히딩크 감독이 "별로" 라는 반응을 보이자 귀화시험을 치지 않았다.
  • 2002년 올스타전 샤샤는 혼자서 무려 4골을 폭격하며 중부 올스타팀의 6:1 승리를 이끌면서 MVP에 선정되었다. [5]
  • 평소 게을렀던 성격 탓에 그라운드에서도 활동량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골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아 골대 앞에서는 활동량이 박지성처럼 되었다. 너무 게으르다고 이차만 감독이 샤샤를 때린적도 있다. 열심히 뛰라고 했는데도 수비를 허투루한 것이 그 이유였다. 한 번 혼쭐이 나고서 샤샤의 플레이는 다소 나아졌다. 성남 시절에도 데니스와 함께 죽이 잘맞아 게으름을 부리려 시도(?)했는데 감독보다 무서운 호랑이 신태용 주장때문에 그럴수 없었다는 후문.
  • 꾸준히 득점하는것도 잘했지만 한경기에서 몰아넣기에도 능했다. 특히 해트트릭 부문에서 김도훈 선수와 함께 통산 6회나 K리그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그중 한번은 4골, 또다른 한번은 무려 5골을 한경기에서 집어넣었다.. 하필 두번 모두 상대가 부천 SK... ;; 상대 키퍼는 각각 최현한동진이었다. 덕분에 샤샤 베프 최현, 한동진 소리를 많이 들었다.
  • 부산이 샤샤를 매물로 내놓자, 샤샤의 영입전에 뛰어든 팀이 수원 삼성과 부천 SK였다. 이때 나름 부천도 샤샤 영입에 열을 올렸지만 수원의 돈질앞에 분루를 삼켜야만 했는데.. 만약 저 당시 샤샤가 부천에 영입되었더라면 윤정환의 패스를 받아 샤샤가 골을 넣는 전설적인 광경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K리그 판도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 세르비아보이보디나 노비 사드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샤샤가 보이보니다의 구단주라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루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은데..


같이 보기[편집]


참고 사항[편집]

  1. 당시 샤샤는 "머리로 넣었는지 손으로 넣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라고 뻔뻔하게 말하면서 기자들의 분노를 샀고 결국 기자단 투표에서 결정되는 MVP를 타지 못했다.
  2. 당시 샤샤가 맹활약을 펼치게 된 데에는 故차경복 감독의 힘이 크다. 자존심이 센 샤샤를 위해 차 감독은 샤샤에게 매일 식사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자신에 대한 관심에 기분이 좋았던 샤샤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3. 차경복 감독은 샤샤에게 넌 절대 너 자리를 벗어나지 마라고 말하며 수비에 가담하지 않을것을 주문했다.
  4. 샤샤의 최측근이었던 한 인사는 '스캔들'을 살짝 확인시켜줬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탤런트 A양과 진지하게 사귀었던 것이 사실이라는 증언이다. 이 인사는 "샤샤를 통해서 내게 넥타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유고에도 같이 다녀간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5. 6골 중에 4골을 샤샤가 넣고 1골이 신태용이 넣으면서 성남 선수가 6골 중 5골을 합작한 셈이 된다 역시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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